역사와 서민들의 이야기
* 이번 이야기는 2ch의 VIP게시판 이야기가 아니라 , 근현대사 게시판의 이야기입니다.
1
너희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들은, 리얼한 실제역사를
모두에게 들려주기 위한 게시물.
역사상의 유명인과의 접촉
역사상 중요한 사건에 관련된 이야기
조상님이 영웅인데, 그 가족만 아는 이야기
그 외, 아무래도 좋지만 재미있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좀 써 줘.
개인적으로는 일본개항부터 러일 전쟁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11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의 돌아가신 할머니는, 젊었을 무렵 도쿄 긴자에서 밀크 셰이크를
처음 마셔보고 세상에 이런 맛있는 것이 있다니, 하고 생각하셨다고w
13
다이쇼 후반부터 쇼와 초기 시대 이야기이지만, 우리 증조 할머니는 소학교를 졸업한 후, 현지의
현립 공업학교에서 자동방적기를 배우면서 일했는데, 당시로서는 무척 중요한 기술이었기 때문에
소학교 교장과 같은 수준의 급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몇 달에 한번씩 친척들에게 집과 땅을 사줬다고. 그 무렵 나이가 13세 즈음이셨다고 하니까,
지금 시대로서는 상상도 못할 이야기지.
16
그러고 보면, 증조 할머니의 증조 할아버지 or 할아버지는, 도쿠가와 막부의 낚시, 사냥을
안내하는 수행원이셨대. 그 대가로 도쿠가와 가문의 아욱문장이 들어간 칼이나 옷같은 것을
선물로 종종 받았다고.
한번은 친척 애가 학교에서 싸움이 났을 때 그 칼을 가지고 보복하러 간 적도 있다고w
쇼와 시대에 건달이었던 사촌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칼을 갖고 다녔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하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여튼 지금보다는 법률이 느슨했던 것 같다.
17
>>16
진짜 도쿠가와 가문의 칼이라면 대단하다
그거 지금은 중요문화재 아니야?
19
>>17
그럴까?
10개 쯤 있었다고 하니까, 보검같은 것은 아니고 흔히 선물로 내리던 물건이 아닐까?
하나는 아직도 외가에 있는 것 같지만, 나머지는 전쟁 때 공출당한 것 같아.
다른 물건들은, 다락방에 쌓아두었는데 태풍이 불어 지붕째로 날아가는 바람에 다 잃어버렸다고w
일단 내년에는 외가에 돈을 싸들고 가서 그 칼을 받아올까, 하고 생각하고 있지만w
37
할머니가, 고조 할머니로부터 들은 러일전쟁 이야기입니다만
고조 할머니는 당시 일본이 러시아에게 이길 전망은 아예 없다고 생각하셨다고.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이긴 것은 도고 제독 덕분이라고...
38
당시의 일반 서민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굉장히
흥미가 있었는데, 이 게시물 방향성 좋다.
39
러일전쟁은 러시아의 자폭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44
우리 할아버지는 시베리아로 끌려갔지만 생환하셨다.
할머니는 공습으로 폭탄이 떨어지길래 죽겠거니, 생각했는데
그 폭탄이 뒷간에 떨어지는 바람이 불발되었다고.
48
다이쇼 시대, 할머니의 할아버지는 공무원이었는데 퇴직금으로 말 한 마리을 받았다고.
그런데 매우 영리한 말이라서 농사 일을 하다 곧잘 탈주했지만 저녁 밥 먹을 때면
꼭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5
>>48
웃기다wwwwww
한가로워w
113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노몬한에 끌려가셔서(역주:1939년 일본-소련 간의 대규모 군사적 충돌.
당시 장비가 열악했던 일본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은 바 있습니다) 다행히 상처 하나 없이 돌아
오셨지만... 지금은 소련 측의 자료가 공개되어 쌍방이 모두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왔지만..
당사자로서 느낀 것은,
「이만큼이나 장비에 차이가 있으면 절대 이길 수 없어....」
115
내가 10살 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러일전쟁 개전시 도쿄에서 학도군으로 출병, 랴오양, 심양에서
싸우셨다고. 대학 동기들도 많이 지원했지만, 뤼순공격 당시 거의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무리한 공격을 지시한 노기 대장 때문에 좋은 놈들이 많이 죽었다」라며 평생 그를 싫어하셨다.
육군소속이었음에도 해군의 도고 제독을 신처럼 우러러봤고, 심지어 거실에는 그의 사진을 걸어놓으셨을
정도.
태평양 전쟁 때는「도조 히데키같은 미치광이가 일으킨 전쟁, 절대 이길 수 없다」라고 공언하고,
선거에서 전쟁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후보를 응원하거나 자유주의자를 집에 숨겨주거나 했기 때문에,
경찰에 끌려가기도 했고 사복경찰관이 집 근처를 서성이기도 했다고. 만약 재향군인회의 임원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체포되었을 거라고 한다
그렇지만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에는 도리어 재향군인회 임원이었던 사실이 문제가 되어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많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셨다.
「모처럼 전쟁이 끝났는데, 한창 때의 특별 고등경찰들보다도 이 빨갱이들이 더 지독하다」
라며 한탄을 많이 하셨다고 하는데, 한국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다시 공산주의 세력이
몰락하고 외할아버지가 다시 마을유지로서 힘을 갖게 되셨다고.
119
다이쇼 시대에 태어난, 돌아가신 할머니는 오사카 중심부에 거주하셨던 초 명문가 아가씨.
다카라즈카 연극을 매일같이 구경하고, 고베의 외국인이 경영하는 케이크 상점이나 초콜릿
가게에 쇼핑을 다니셨다고.
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별장으로 피난을 가서 거기서 스키야키나 아이스크림을 부족함 없이
드셨다고 하고, 남동생은 집에 있는 설탕이나 물엿으로, 그걸 미끼로 무수한 여자들을 헌팅
하고 다녔다고 하고...
거의 현대와 다름 없는 높은 문화수준을 향유하셨지만,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도 히틀러와
무솔리니에 대해 '일본과 같은 편'이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훌륭한 사람이라 옹호한 것에서,
시대를 느낀다.
145
우리 할머니는 91세이신데,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해군제독 도고 헤이하치로와 만났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할머니가 다니던 여학교에 왔는데, 학생대표로 할머니가「각하, 휘호를
남겨주세요」라고 하자, 아무 말 없이 멋진 필체로 글을 남겨주었다고. 그건 아직도 학교에
남아있다고 한다.
뭔가 한 말씀 하지는 않을까, 기대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아서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귀가 안 들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을
정도라고 하는데,「휘호를 남겨주세요」라는 말에 곧바로 글을 써주었다는 점에서, 장애는
아니었라고.
235
우리 할아버지.
젊으셨을 때, 혼다 소이치로(역주:대기업 HONDA의 창립자)와 아는 사이셨는데,
혼다 소이치로가 처음 오토바이 가게를 시작할 때「함께 하지 않겠는가?」 하고
권유를 받았지만 돈이 안 될 것 같아서 거절하셨다고.
아아, 할아버지! 보는 눈이 너무 없으셨어요!!
237
>>235
당시 혼다는 인근(아카사카?)에서는「속도광」수준으로, 조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던 것 같아. 무리도 아니야.
247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할아버지나 증조 할아버지는 어렸을 적, '일본근대문학의 어머니' 요사노 아키코씨의 옆집에
살았는데, 요사노 아키코는 당시 인근에서는「그 애랑 놀면 안 돼!」라고 일컬어졌다고 한다.
불량녀였던 것 같다.
250
>>247
뭐, 지금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무렵에 연애 결혼은 불건전한 일이었다고. 그 시절부터 자유분방한 성향을
보인 그녀니까, 그런 만큼 아무래도 평이 좋을 수는 없었겠지
252
우리 할아버지는 관동군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시베리아로 끌려가서 돌아온 것이 쇼와 24년(1949년).
그 때 우리 아버지는 5살로, 사진으로 밖에 자신의 아버지를 몰랐으니까 사진과 다르게 변해 버린 할아
버지를 처음 보고「아빠왔다」라는 말을 들어도 전혀 실감이 없고 낯선 아저씨라는 생각이 들어서 도망
쳐버렸다고 한다. 할아버지도 괴로우셨을 것이다.
시베리아의 수용소에서는 전원이 영양실조로, 매일같이 전우가 죽었다고 한다. 어젯 밤「잘 자라」,
라고 했던 동료가, 아침이 되면 죽어있다.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간다!」라고 계속 강하게 다짐한 덕분에 살아남았다,
라고. 8년 전에 돌아가실 때까지 러시아인들을 저주하셨고, 심지어 돌아가실 때 남긴 유언마저
「러시아 놈들만큼은 믿지마라」였다.
597
증조 할머니가 어렸을 적, 자주 집의 근처를 야마모토 곤베에(역주:러일전쟁 당시의 해군제독이자
총리를 2번이나 역임한 인물)가 출근용 마차를 타고 지나다니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린 증조 할머니가「곤베씨!」하고 부르면, 서민이 부른 것이었음에도「네!」하고 대답하며
마차에서 정중하게 경례를 했다고 한다.
599
>>597
이 이야기, 사실이라면 이 게시물의 이야기 중에서 제일 레벨 높지 않아?
당시 최고 권력자와 접했을 뿐 아니라 그 익살맞은 평소 모습까지 엿본 셈이니까···
823
우리 할아버지도 시베리아 억류 경험자.
시베리아 억류의 비참한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할아버지에게 물어봤지만,
「러시아인은 상냥했다」라는 전혀 예상 외의 대답이 왔다.
할아버지 가라사대, 러시아 병사들은 잔반도 잘 줬고, 그래서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정말 좀 황당한 야기이지만, 할아버지는 어쨌든 살아서 귀환할 수 있었다는 자체에 감사
하고 있는 것 같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그 이외에도, 강제노역으로 농사가 끝난 후 수확한
감사가 한 명당 2개씩 배부되어 그것으로 떡을 지어 먹었다던가. 뭐 그런 이야기 뿐이었다.
827
>>823
전쟁 종군기록같은 것을 봐도,
소련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사람조차도 러시아 사람은 뜻밖에
상냥했다는 기록은 쉽게 발견할 수 있어. 대개는 음식관련 이야기지만...
그리고, 포로를 폭행한 소련 장교가 이등병으로 격하된 이야기 등, 일본군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도 종종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