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현실


연말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친척 일동이 오래간만에 모였다.

할아버지도 이미 연세가 굉장히 고령이셨기 때문에 장례식이기는 해도 그다지 크게 슬픈 느낌은 없었고
다들 조용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었다. 장례식을 준비하는 동안 삼촌 중 누군가가

"OO야, 너 언제까지 쉬는거야?"

하고 물었다. 그러자 삼촌은 놀랍게도

"아, 나 일 그만뒀어"

하고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다들 금시초문이었기에 "엉?" 하는 얼굴로 사정을 들었다. 삼촌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3일 정도 휴가를 받았으면 합니다" 라고 휴가계를 냈는데, 상사가 차분한
얼굴로 "요즘처럼 바쁜 시기에 3일이나 휴가를 쓸 수는 없어. 휴가는 하루만 썼으면 해. 그리고 장례식이
끝나면 조금 손이 빌테니까 조금이라도 출근해줬으면 해" 하고 말했다고 한다.

삼촌은 그 말에 폭발,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도 휴가 3일조차 쓸 수 없는 회사 따위 다니고 싶지도 않다.
이 회사 인간들은 다 쓰레기다!" 하고 상사와 말다툼을 하다가 결국 삼촌이 사표를 던지고 온 것 같다.

다들 멍하니 듣고 있었고, 나는 "그래, 잘했다. 효자다. 일자리야 뭐 어떻게든 되겠지. 힘내라" 하는 흐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고모는 달랐다.

"뭐? 회사를 관둬? 너 엄마랑 나한테 의지하려고? 너 그 나이에 재취업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해? 상사한테
가서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 너 어차피 장례식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야. 애초에 3일씩이나 쉴 필요도
없어"

하는 폭언의 폭풍이었다.

마흔에 가까운 아저씨가 사람들 앞에서 엄청나게 혼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과연 여자는 현실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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