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57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577
>> 571
굉장하다



615
>> 571
매트 페인팅. 지금 CG 배경보다 예술적이다



579
>> 571
영화의 한 장면을 그리고 있는게 아니라, 실제 영화에서 쓰인 그림을 그리는거?



581
>> 579
그래. 옛날에는 흔한 수법이었다



578
>>571
상당히 다양한 영화에서 예전부터 유명한 수법. 다이하드 2의 마지막 공항 부감은 일본인이 그린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




686
이 작품 제목 아는 사람?

사용자 삽입 이미지




692
>> 686
Modern Times
* 역주 :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민감한 스레드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에 대해 일부 방문자 분들이 불편함을 느끼시고, 그것을 넘어 소개의 의도 자체에 의문을 느끼는 분들마저 계신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서 우선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다만 해당 부분에 대해서 저는 조금 생각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전혀 주장으로 논쟁을 한다면, 당연히 상대의 주장과 논리에 대해 미리 사전에 알아보고 준비를 한 쪽이 유리해지겠지요. 또, 설령 한쪽이 아주 압도적인 명분을 가진 쪽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귀 막고 소리 지르며 "안들려 안들려 안들을래~"하고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는 태도를 취한다면,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보았을 때는 오히려 조곤조곤 그 나름의 논리를 말하는 가해자 측 주장에 더 귀를 기울일 수도 있구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들(5ch의 일부 유저들)이 평소 하는 이야기나 주장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도 않는다면, 언젠가 그들의 주장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을 해야하거나 논리적으로 따져 물어 부정을 해야할 때, 미리 준비를 하지 못하여 의외의 궤변에 휘말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주장을 알아야 대응논리도 더 확실하게 준비하고 증거자료도 철저히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 블로그는 바로 '그들'의 또 다른 글들을 소개해 온 블로그구요.

알아야 싸우고, 들어야 준비하여 반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연유로 그러한 글들도 소개하고 있는 것이오니, 부디 많은 양해 바랍니다. (물론 그럼에도 '굳이'라는 의문이 드시는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를 하오니, 부디 다시 한번 양해를 구합니다)



2
이영훈 전 교수는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한 류석춘 교수에 대해서도 옹호했다.

또 이영훈은 위안부를 소재로 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소개했다. 1943년 6월, 어느 농촌에서 14세 소녀가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가 된 후, 일본군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총살을 당한다는 결말...이처럼 영화의 내용을 설명했다.

이영훈은 "여러분은 이 영화를 보고 통곡을 했나요? 그런데 이 영화가 정말 사실입니까?" 하고 묻는다.

"이 영화의 자막을 보면, 생존한 위안부에 의한 실화라고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의문점이 많다.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내외 연구자들은 이 영화에서 언급된 사례 등에 대한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 라며, 영화의 내용을 유언비하라고 주장한다.

이어 그는 "한국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엉터리 사례들을 교과서에 게제하거나, 일본에 의해 위안부가 끌려갔다고 떠들고 있다" 라며 발언하는 영상을 유투브에 약 40분에 걸쳐 공개했다.



62
한국이 주장하는 위안부 숫자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다.

관동군이 전성기에 200만 명인데, 20만이 넘는 위안부라면 10명 중 1명 꼴로 위안부가 배치됐다는 소리인데 말도 안된다고w



92
이미 일본과 한국은 돈으로 합의를 봤어.

국제사회에서 아무리 외쳐봤자 거지 소리 밖에 못 듣는다고.



127
만약 일본에게 정말로 전쟁 말기에 20만명의 인원을 무사히 수송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남방 전선에서 그 꼴이 나지는 않았을거다



133
이영훈 저 사람의 대단한 점은 당시 위안부 숫자까지 예상하여 20만명 설을 부정하고 있는 점이다. 당시 일본군은, 병사 150명 중에 1명 꼴로 위안부를 준비했다고 하는데, 모든 위안부 중에서 조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0% 정도라는 기록을 근거로 당시 조선인 위안부 인원을 약 18,000명 정도로 산출한다. (이 숫자는 정확한 기억은 아님)

어쨌든 20만명 설이 얼마나 황당한 숫자인지를 자료로 증명하고 있다. 전혀 다른 개념의 근로 정신대와 위안부를 의도적으로 혼동하여 위안부 숫자를 부불려 과장, 선전해온 것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145
>> 133
당시 일본군 인력 계획 및 배포된 콘돔의 수를 역산하여 1944년 시점에서의 조선인 위안부는 약 3,500명 정도라고 주장했다. 1937년~45년까지의 전체 위안부 숫자는 회전율(교체 비율)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위안부의 평균 계약 기간이 2.4년 정도니까 그 3배인 1만명 정도가 아닐까.



5
한국인은 영화를 사실로 믿는 풍조가 있는 것 같다.



30
>> 5
독도가 왜 한국의 영토인가 라고 물어보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있다" 라고 떠드는 놈들마저 있는 민족이다. 얕보지 말라고.

71 세계 최대 터미널을 가진 '베이징 다싱 국제 공항'이 마침내 오픈! 이것은 그야말로 SF...

외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항 철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107
>> 71
묘하게 기분 나쁜데w

건축가 자하 하디드를 빼면 뭐가 좋은지도 모르겠어



81
>> 71
저렇게 멋있는데 제발 중국인들이 저기서 진상 부리고 똥 같은건 안 쌌으면 좋겠다



100
>> 71
아무리 멋지게 만들면 뭐하냐. 중국인들이 운영하고 사용하는 이상 어차피 1주일이면 똥투성이가 될텐데



236
>> 100
그건 이미 옛날 이야기.

요즘의 중국은 슈퍼 감시사회이므로, 저런 공공장소나 외국인들의 눈이 닿는 곳에는 감시 카메라가 철저히 감시하기 때문에 더러운 짓이나 이상한 짓을 했다가는 엄벌이 가해진다.

특히 중국의 국제공항은 위장복에 기관총, 맹견까지 데리고 병사가 수시로 순회하기 때문에 무섭다.
도저히까지는 아니겠지만 똥을 아무데서나 싸갈길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92
>> 71
저거 때문에 인천 공항은 아시아의 허브공항 자리를 잃을 것 같군w



162
>> 92
인천이 허브공항 지위를 잃는다고 해도, 국내여행은 김포로 충분하다. 원래 인천공항의 허브 역할은 상하이 푸동 공항으로도 충분함.



169
>> 162
뭐 그건 그렇겠지.
하지만 허브 공항으로서의 기능을 잃는다면 한국 항공사는 상당한 타격이 될 걸.



32
중국 시골의 디스토피아 느낌 좋아 ( '· ω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46
>32
사람 살고 있기는 해? 이건 좀 ( '· ω ·`)



44
>> 32
심시티인가 ( '· ω ·`)



42
>> 32
'A열차로 달려라' 게임에서 1000만명짜리 도시 만들다 보니 이런 느낌 되던데 ( '· ω ·`)



43
>> 32
폐허 매니아를 위한 투어 진행하면 떼돈 벌겠다



123
'유령 도시'
부채가 증가하는 한편, 고층 아파트가 늘어선 신도시는 거의 텅 비어

중국 내몽골 자치구의 오르도스. 고비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이 새로운 도시 거리에는 어마어마한 고층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지만, 아무도 살지 않은 채로 거의 텅 비어있다.

그러던 중 28층 아파트에 이달 초, 슈 씨 일가가 이사왔다. 아파트 복도에는 약간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문 앞에 세발 자전거와 슬리퍼, 분홍색 어린이 신발 등이 놓인 집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집들은 문에 아직도 비닐 커버가 달려있다.

거리에 보이는 가게는 모두 빈 점포이다. "이 지역에는 거의 사람이 없다." 식탁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슈 씨는 말했다.

10년 전, 오르도스 시는 풍부한 석탄 매장량에 힘입어 중국 유수의 부유한 도시였다. 시 당국은 척박한 사막의 땅을 도시로 바꾸려고 도로 등의 인프라에 많은 투자를 했다. 그러나 석탄 수요의 감소로 도시의 연간 성장률은 2008년 이후 3분의 1이하로 떨어졌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여 시의 부채는 예산의 약 250%까지 늘었다.

이러한 지역의 경제를 다시 활성화 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다른 대부분의 유령 도시에서도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홍콩대학에서 도시 계획을 공부한 죠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유령 도시가 다시 경제적 채산성을 맞추기 위해서는 20년 혹은 30년이 소요되고, 어쩌면 영원히 그 소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보이는 곳마저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담당자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 대담한 계획을 장려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당국자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그 보직에서 떠나게 되므로, 해당 지역의 장기적 성장에 대한 문제는 고려조차 않지 않았다고.



102
남아공처럼 다른 빈민국이라면 저런 곳은 순식간에 거대한 빈민가로 완성되겠지만, 노숙자조차 보이지 않는 중국. 과연w

일당 독재의 무서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