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는 날

5ch 컨텐츠 2009/11/07 14:02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가 만취한 상태였다. 
 

출근길에 스타킹이 찢어지고, 신호가 바뀔 때마다 빨간 신호고, 스타벅스에서 소이라떼를 주문하니
그냥 밀크를 넣어주고, 복사기가 자기가 쓸 때마다 계속 용지부족 타이밍이라 몇 번이나 복사용지를
보충하고, 상사한테 불쾌한 소리나 듣고……그야말로 다양하게 오늘은 짜증나는 날이었다고 한다.

이런 날은 마실 수 밖에 없잖아요~라면서 냉장고에 있던 중국식 샐러드팩을 안주삼아 마시고 있었다.
개수대에는 이미 다 비운 맥주캔이 몇 개나 있었다. 나도 한잔할까, 하고 냉장고로 향하자 그렇게 해요
하고 호응했다.

야채실로부터 파를 꺼낸 후, 프라이팬을 따뜻하게 데우고 도마와 나이프를 씻은 후 닭꼬치와 파를
서둘러 참기름으로 볶았다. 아내가 먹고 남을만큼 충분히 많이 볶았다.

안주가 늘었다는 기쁨, 아내는 내가 돌아오고 나서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보인다.
그 순간 문득 깨달은 것처럼, 아 자기 왔는데 인사도 안 했었네하며 자조했다.

아냐, 너 인사했어 하고 거짓말을 하고는, 아내의 글라스에 잔을 채워주었다.
미지근해 진 잔이 불만인 아내에게, 냉동고에 넣어둔 컵을 꺼내 건네주며 프싯, 하며 딴 지 얼마
안된 새 맥주를 따라주었다.

뭐가 그리도 감동이었는지,
희미하게 들릴 정도로 고마워요 라고 중얼거리며, 울기 시작한 아내.

아내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나에게 의지해주니 조금 기쁘다고 생각한 금요일 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은 좋은 날이라고 판정을 내린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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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드 2009/11/07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러우면 지는건가요?

  2. 뭐... 2009/11/07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전이 없어.
    그냥 가슴이 따땃해지는군요.... 리라쨩 결혼이 하고 싶으신건가요...

  3. lakemisty 2009/11/07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이런 잔잔한감동이!
    요런거 좋아합니다.
    애인도 없고 나이도 어린데 결혼하고싶네요.

  4. 엘시캣 2009/11/07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아아아아

    부럽습니다!

  5. ㅁㄴㅇㄹ 2009/11/07 1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래놓고 필름끊기면 무슨소용

  6. 둥그리 2009/11/07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개그가 아니라 일상이나 감동인듯요~

  7. 아옳 2009/11/07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줄에 오늘은 좋은날이라고 판정을 내린게 짜증난다는게 아닌가요

    • vaginismus 2009/11/07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루종일 짜증의 연속이라서 오늘은 나쁜 날이었는데,
      남편덕에 좋은 날이 되었죠

  8. 훗... 2009/11/07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

    혼자 한잔하면서 저런 상상을 하면

    조금이나마 덜 우울할지도 몰라...

  9. 코나기 2009/11/07 2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효... 그래도 훈훈... 하다고 해야 하려나요...
    지고 싶진 않지만

  10. 페퍼포그 2009/11/07 2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론: 요리를 잘해야 사랑받는 남편(...)

  11. 블루 2009/11/08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분들은 자잘한 상황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잘 달래주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12. 현실은.. 2009/11/08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 깨고 보니
    설거지 거리만 늘어났지,
    많이 볶아서 남은 닭고기는 다시 먹자니 맛이 없지,
    무엇보다도 비루한 일상은 다시 예전 그대로 반복.

    결국 이런 마법같은 순간도 결국 스팀팩에 불과한 것이다.

  13. .... 2009/11/08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난 저 뒤치닥을 하느라 짜증났지.. 가 제목의 의미인건..

  14. 쿨녀 2009/11/09 0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훈훈한 글... ^^ 저래서 결혼을 하는거겠죠~

  15. *^* 2009/11/09 1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건 아내가 좋은날이라고 생각 <- 스섹하기 좋은날로 받아들인거고..
    남자는 일하고 와서 안주까지 먹이니 스섹하자고 덤비니 그떄부터 피곤하고
    짜증나는 날이 된거지

  16. FFF 2009/11/09 1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좋은 날 이라는 건 그런 뜻인가...하고!

  17. asd 2009/11/12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닭꼬치를 만들어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왜 먹지를 못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