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해는 아버지가 29살이었을 때니까 아버지가 실제로 서른살에 대머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확실히 서른살을 전후해서 갑자기 대머리가 되었다고.
할아버지도, 증조 할아버지도 서른살에 대머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할아버지도 증조모에게 이미 "니 애비도 서른살에 대머리가 됐다.
이건 이 집안의 숙명이니 각오해두거라" 라고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는데,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서른살이 되자마자 주변에서 더 놀랄 정도로 머리카락이 빠졌다고.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내가 철이 들었을 때부터 이미 광활한 가마 넓이를 자랑하는 상태였다.
덧붙여서 험궂은 인상 때문에 아예 대머리로 살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두 분 다 윗머리를
아주 길게 길러서 후두부 대머리를 가리는 헤어스타일이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그 둘에게 "너도
언젠가 이런 머리로 살게 될 것이다" 라고 들어 전전긍긍한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부모님께 부탁해서 누나가 다니던 미용실에서 두피관리를 받았다ww
소금기가 두피에 부담을 줄까 싶어서 땀을 많이 흘리는 동아리도 가급적 기피하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항상
도서위원을 담당하는 등 눈물겨운 노력은 어린시절부터 성인기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서른살이 되었을 때, 나는 전혀 대머리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를 의심하여 "정말 내 아들 맞나?" 하고 생각했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무언가의 심증이 있었던지 "설마 그때..." 하고 무심결에 말을 해버린 탓에
부모님은 이혼소동이 벌어져 결국 친자확인 검사까지 받게 됐다. 이혼재판에서도 근거자료로
자주 활용될 정도로 신뢰도 높은 회사에 의뢰한 탓에 무려 수십만엔 가까운 비용이 들었고
그 검사결과 다행히도 나는 부모님의 자식으로 증명됐다.
하지만 아버지는 30년 전 어머니가 저지른 불륜에 충격을 받았고, 어머니는 그 불륜은
할머니의 가혹한 시집살이와 무관심했던 아버지의 탓이라며 부부관계가 완전히 냉각기에 접들었다.
조정명령까지 받은 끝에 어떻게든 이혼까지는 피했지만, 지금도 부모님은 별거 상태가 되었다. 그 둘 모두에게 나는 결혼생활 파탄의 책임자처럼 되어 엉뚱한 화풀이를 지속적으로 받은 끝에 나는 먼 곳으로 이직을 결정, 친가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여자친구와 함께 결혼을 전제로 동거를 시작하게 되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얼마 전 여친이 탈모방지 전용샴푸를 선물했고 이것은 드디어 나에게도 올 것이 왔다는 소리이리라.
그런데 어차피 올 것이었다면 3년 전에 왔으면 차라리 좋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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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프잖아. ㅠ.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