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이 내가 다니는 대학에 진학했다.
둘이서 산다면 싸게 투 룸짜리 자취방을 빌릴 수도 있겠지만, 이성친구도 생기고 할 테니까 그냥 따로따로
자취방을 빌려 살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여동생 방에 동아리 선배(남자)가 심야에 종종 찾아오는 것 같다.

「아 미안. 막차가 끊어지는 바람에☆아무 것도 안 할테니까」라면서.

그래도 당연히 남자를 방에 들여놓고 마음 편히 잘 수는 없으니 여동생은 잠도 안 자고 아침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첫 차 시간이 되면 돌려보내곤 했지만, 그런 일이 몇 번이나 계속되자 무척 귀찮아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선배 앞인지라 뭐라고 할 수도 없어 곤란해하고 있다며 나에게 상담을 해왔다.

그리하여 내가 본격적으로 나섰다.

나는 체중이 100kg이 넘는데다, 머리는 빡빡깎은 머리, 탁구와 미식축구와 스이세이세키쨩을 좋아하는
자칭 오타쿠 스포츠맨이다. 나는 내가 가진 미식축구 장비를 챙겨 당분간 여동생 방에서 머물기로 했다.

3일 째 되던 날.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놈이 온 것 같다.

여동생은 문 앞에서「오늘은 조금…」,「저 졸린데요…」하고 거절했지만,
「미안, 너 말고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 부탁할께! 응? 좀 있다 갈께!」하고 뻔뻔스레 
부탁하길래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것이 함정인지도 모르는 바보놈.

나    「여, 어서와」
남자 「!?!?!?」

거기에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미식축구 장비를 풀로 갖춰입은 내가 있었다.

여동생 「아, 대학에서 미식축구를 하고 있는 오빠에요. 오늘은 놀러왔어요」
나       「흐흐」
남자    「아, 안녕하세요…」

미묘한 공기이지만 남자는 자리에 앉았고, 여동생과 잡담을 시작했다. 하지만 풀 장비를 착용한 채 헬멧까지
쓰고 마우스피스를 낀 채 앉아있으면 거구인 나는 무척 괴롭다.

후슉, 후슉, 후슉하며 다스베이더처럼 숨을 쉬었다.

점점 남자의 침묵이 많아진다. 이것은 찬스다.

나    「그런데 너, 고등학교 때는 뭐했어?」
남자 「네?」
나    「동아리 말이야, 동아리. 뭐라도 했을거 아냐?」
남자 「아, 테니스입니다. 지금도 테니스부입니다」
나    「아, 좋아, 좋아. 우리 팀에 런닝백이 필요한데 말이야, 너라면 제법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보이는데」
남자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침묵.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슥(조용히 일어서는 나), 하지만 다리가 저려 실수로 남자에게 쓰러진다.

남자 「왁!」

쿵!

나    「아 미안 미안, 괜찮아?」
남자 「아, 네, 괜찮습니다」
나    「오오! 너는 꽤 몸이 튼튼한 모양이야. 이건 완전히 미식축구다! 미식축구를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야!」

그리고 나는 프로틴이나 근력 트레이닝, 미식축구 연습 등에 관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끝도없이 말했다.
그렇게 아침까지 미식축구에 대한 권유를 마구했고, 이름과 학부, 나중에 만나 진지하게 입부에 관해 이야기
해보자는 약속까지 얻어냈다.

그 후 첫 차 시간에 조금 앞서서,「그럼 나는 잠깐 조깅 좀 하고 올께」하며 방을 나섰다. 그리고 남자한테는
「아, 네가 여동생 방에 놀러오면 난 언제라도 달려올테니까 또 이야기하자구!」라고 마무리까지.

그리고 얼마 후 방에 돌아오자 남자는 없었다.

여동생 왈, 내가 나가자마자「나 갈께」라며 떠났다고. 게다가「혹시 오빠가 물어봐도 내 휴대폰 번호는
가르쳐주지 말아줘」라고 했다고. 아마 더이상은 안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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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홍 2007/07/19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빠!!! 가문의 영광입니닷!!

  2. 아고몽 2007/07/19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쉬운 2등이로군요. 멋진 옵햐에요 ㅡ.ㅡ//

  3. 크랏세 2007/07/19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광의 2빠 ㅠㅠ
    ....확실한방법이군요. 참 좋은오빠를 가진 여동생임에 틀림없습니다 ;ㅁ;b

  4. 후배 2007/07/19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라지만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너무 뻔뻔한거 아닌가...완전 민폐에 찰거머리 같은 선배로군...

  5. 길손 2007/07/19 1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오타쿠란 무서워...!

  6. 시니컬페이스 2007/07/19 1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상한 오빠이긴 한데..

    일본인 특유의 돌려서 이야기하는법이 보이는군요..

    한국같았음.. 그냥 바로 그 선배 전번알아내서 욕이나 한사바리 해주던가..

    집에 오자마자.. 원투날렸을꺼같은데...

  7. 5호 2007/07/19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오빠군요
    멋지다

  8. 그러게요 2007/07/19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 같았으면 오빠가 집에서 지키고 서있다가 선배가 나타나자마자 매우 욕해주고 맞지만 않으면 다행일듯...

  9. 강철 2007/07/19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하하하 저거 막 상상되네요! 대충 어떤 분위기의 사람인지 글쓴이의 모습이 명확하게 상상되는(..)

  10. 스타이너 2007/07/19 1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화차이인가봐요...

    내 여동생인데 저러면 정말...

  11. nero 2007/07/19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화차이인지 사람차이인지 잘 모르겠는데 보통 그러나요?

    저같아도 저런 유사한 방법을 생각해 낼 것 같은데... 정말 최악의 상황이 아니고선.

  12. sr 2007/07/19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빠 멋있다아.. 우리오빠였으면 내가 뭐라고 말해도 무시.. 무시..
    일본식으로 돌려말하는게 저럴때 유혈상황을 만들지 않고 더 좋은거 아닌가요?:;

  13. 밭뚜렁 2007/07/19 2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상황은 선배가 별로였던가, 여동생이 미인이 아닌 것이다.

  14. sss 2007/07/20 0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오빠 집이 가까우니까 거기서 자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염..
    그리고 문화차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빠성격에 따라서 다를껄요^^ㅋㅋㅋㅋㅋㅋㅋ

  15. 잭 더 리퍼 2007/07/20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옥수수를 털어버렸어야지[...]

  16. 핸드크림 2010/06/28 1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두들겨패주었어야 된다는 분들은..
    글쎄요 너무 당연하단 듯이 말씀하셔서 좀 당황스러운데요.

    보니까 여동생도 그 선배한테 조금은 마음이 있는 것 같잖아요.
    단지 도를 넘은 행동이 불편한 거지.. 얼마든지 친하게 지내고는 싶어하는 티가 나는데요.
    여동생이 선배한테 마음이 전혀 없었다면 애초에 방에 들이는 일 자체가 안 일어났겠죠?
    아니 최소한 학교에서 얼굴 자주 마주치는 사이인 건 확실한데
    오빠가 나서서 그 선배 패버리면.. 여동생 입장이 얼마나 난처할까요.

    이건 문화차이 문제가 아니라.. 저 오빠가 일처리를 아주 현명하게 잘 한 것 같은데요.

    • RnB 2011/04/09 0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오빠처럼 대처하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침 잭 더 리퍼님도 옥수수를 언급하셨군요.

  17. ㅇㅇ 2010/06/28 1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되면 낭패

    "어? 너 3년전 인터하이에서 x팀 쿼터백으로 뛴 xx아냐?"
    "오오? 선배님 아니심까? 방갑슴다!"
    둘이 죽이 맞아 으하하 낄낄낄거리며 여동생 무시모드 들어가고
    다음날 아침 둘이서 아침운동 하러 나갔다가 남자를 집에 보내고 돌아오니
    입이 삐죽 튀어나온 여동생이 "나가 뒤져 병진아 그래도 꼴에 오빠라고 맡겨놨더니 아주 형아우할 기세네?"

  18. 언덕배리어 2011/07/25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 여동생이었다면 저 놈의 강냉이를 터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절대 다시 찾아오지말라고 으름장 놨겠지
    저렇게 고생 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