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무렵의 이야기이다.
나는 아버지의 일 때문에 얼마간 가마쿠라 시에서 우츠노미야 시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전학 얼마 후,
학교에서는「대변검사」를 하게 되었다. 요즘 학생들은 대변검사가 무엇인지 잘 모를지도.
어쨌든「대변검사」를 한다면 작은 봉투나 은색 용기를 나눠줘야할텐데, 전날 종례 시간까지도 담임 선생님은
「내일은 대변검사 일이니까 절대 잊지 마!」라고 말할 뿐, 대변채집 용 봉투를 나눠주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이상한데, 깜빡하신 것일까」라고 생각해서 옆 자리의 친구에게「봉투같은 건 안 나눠줬잖아」라고 묻자
그는 의이한 얼굴로「(사투리로) 성냥갑은 스스로 준비하야지」라는 것이었다!
성냥갑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처음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친구의 얼굴을 보자 진심인 듯 했다. 내가 내심
전학을 오자마자 반했던 반장 여학생 쿠리하라도 당연하다는 얼굴이었다.
「거짓말!」
나는 초등학교 6학년에 처음으로 집단과 이질적인 자신의 모습에서 고독감을 맛보았다. 녀석의 말을 믿어야하나
말아야하니 갈등했다. 일단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대변검사와 성냥갑 이야기를 하자, 처음에는 어머니도 믿어
주지 않았다. 계속 대변을 담아가야 하니까 성냥갑을 찾아달라고 말했지만「농담 그만해!」라며 혼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내가 더욱 필사적으로 호소하자, 그제서야 어머니도 반신반의하면서 성냥갑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한밤 중이었다. 하지만 운이 나쁠 때는 꼭 그렇듯이, 아무리 찾아도 성냥갑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대로는「대변검사를 깜박했다」라는 멍청한 학생이 된다. 하지만 전학생의 입장이란 그런 작은 미스조차도
용납할 수 없는 위치인 것이다. 필사적으로 수색을 계속한 결과「여기 있다」라는 어머니의 소리. 안심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가져온 성냥갑은 8각 모양의 대형 성냥통이었다. 맙소사. 나는 초등학교 6학년에 처음으로 또
중대한 인생의 갈림길에 처해있었다.
「대변검사를 잊은 아이」라는 오명을 쓰느냐, 아니면 나 혼자 똥이 들어간 성냥갑을 들고 가느냐(녀석의 말이
거짓말이었을 경우), 아니면 혼자 거대한 성냥통에 똥을 담아가느냐.
하지만 나는 낙천적인 아이였다.「뭐, 성냥갑은 어차피 여러가지 크기이고, 작은 성냥갑이 있다면 큼지막한
성냥갑도 있는 법이지」라며 그대로 제출하기로 했다.
다음 날, 담임 선생님 책상 위에 성냥갑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왠지 즐거운, 선물교환같은 광경이지만 내용물은
말 그대로 똥. 성냥갑은 모두 작은 사이즈, 내가 가져온 거대한 성냥통은 역시 이상했다. 마치 그 안 가득 똥이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부끄러웠다. 젠장. 변비환자 인정, 같은 느낌이었다. 분했다. 모두가 비웃고 있었다.
그 웃음 속에서 한 명의 여학생이 자리를 떴다. 아아 동경하던 쿠리하라 였다. 그녀는 내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참지 못한 것이었을까.
「아아, 나는 사랑받고 있었구나」
조금 기뻤다. 모두가 비웃어도 그녀가 나를 좋아해준다면 나는 그것으로 기뻤다. 하지만 옆 자리의 친구는 나에게
속삭였다.
「(사투리로) 너, 쿠리하라네 성냥통을 대변검사에 사용했군. 엄청난 도발인데?」
라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성냥통에는「쿠리하라 자전거」라고 써있었다. 나는 동경하던 여학생의 가게 홍보
성냥통에 나의 똥을 담아온 것이었다. 그 후 그녀와는 졸업 때까지 두 번 다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똥!
나는 아버지의 일 때문에 얼마간 가마쿠라 시에서 우츠노미야 시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전학 얼마 후,
학교에서는「대변검사」를 하게 되었다. 요즘 학생들은 대변검사가 무엇인지 잘 모를지도.
어쨌든「대변검사」를 한다면 작은 봉투나 은색 용기를 나눠줘야할텐데, 전날 종례 시간까지도 담임 선생님은
「내일은 대변검사 일이니까 절대 잊지 마!」라고 말할 뿐, 대변채집 용 봉투를 나눠주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이상한데, 깜빡하신 것일까」라고 생각해서 옆 자리의 친구에게「봉투같은 건 안 나눠줬잖아」라고 묻자
그는 의이한 얼굴로「(사투리로) 성냥갑은 스스로 준비하야지」라는 것이었다!
성냥갑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처음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친구의 얼굴을 보자 진심인 듯 했다. 내가 내심
전학을 오자마자 반했던 반장 여학생 쿠리하라도 당연하다는 얼굴이었다.
「거짓말!」
나는 초등학교 6학년에 처음으로 집단과 이질적인 자신의 모습에서 고독감을 맛보았다. 녀석의 말을 믿어야하나
말아야하니 갈등했다. 일단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대변검사와 성냥갑 이야기를 하자, 처음에는 어머니도 믿어
주지 않았다. 계속 대변을 담아가야 하니까 성냥갑을 찾아달라고 말했지만「농담 그만해!」라며 혼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내가 더욱 필사적으로 호소하자, 그제서야 어머니도 반신반의하면서 성냥갑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한밤 중이었다. 하지만 운이 나쁠 때는 꼭 그렇듯이, 아무리 찾아도 성냥갑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대로는「대변검사를 깜박했다」라는 멍청한 학생이 된다. 하지만 전학생의 입장이란 그런 작은 미스조차도
용납할 수 없는 위치인 것이다. 필사적으로 수색을 계속한 결과「여기 있다」라는 어머니의 소리. 안심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가져온 성냥갑은 8각 모양의 대형 성냥통이었다. 맙소사. 나는 초등학교 6학년에 처음으로 또
중대한 인생의 갈림길에 처해있었다.
「대변검사를 잊은 아이」라는 오명을 쓰느냐, 아니면 나 혼자 똥이 들어간 성냥갑을 들고 가느냐(녀석의 말이
거짓말이었을 경우), 아니면 혼자 거대한 성냥통에 똥을 담아가느냐.
하지만 나는 낙천적인 아이였다.「뭐, 성냥갑은 어차피 여러가지 크기이고, 작은 성냥갑이 있다면 큼지막한
성냥갑도 있는 법이지」라며 그대로 제출하기로 했다.
다음 날, 담임 선생님 책상 위에 성냥갑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왠지 즐거운, 선물교환같은 광경이지만 내용물은
말 그대로 똥. 성냥갑은 모두 작은 사이즈, 내가 가져온 거대한 성냥통은 역시 이상했다. 마치 그 안 가득 똥이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부끄러웠다. 젠장. 변비환자 인정, 같은 느낌이었다. 분했다. 모두가 비웃고 있었다.
그 웃음 속에서 한 명의 여학생이 자리를 떴다. 아아 동경하던 쿠리하라 였다. 그녀는 내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참지 못한 것이었을까.
「아아, 나는 사랑받고 있었구나」
조금 기뻤다. 모두가 비웃어도 그녀가 나를 좋아해준다면 나는 그것으로 기뻤다. 하지만 옆 자리의 친구는 나에게
속삭였다.
「(사투리로) 너, 쿠리하라네 성냥통을 대변검사에 사용했군. 엄청난 도발인데?」
라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성냥통에는「쿠리하라 자전거」라고 써있었다. 나는 동경하던 여학생의 가게 홍보
성냥통에 나의 똥을 담아온 것이었다. 그 후 그녀와는 졸업 때까지 두 번 다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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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검사라.
(1등을 노리는 매의 눈)
그런걸로 도발로 받아들이다니 찌질하긴 (... 이라 해도 초등학교때는 그런거에도 민감할듯??)
도발..ㅋㅋㅋㅋㅋㅋ
구리하라는 지금 성냥갑 옆에....
음 근데 대변검사는 왜 하는거였나요?
우리나라에서도 했나요?
기생충이 있나 검사하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초등학교때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보다 봉투도 아니고 왜 성냥갑에 똥을 넣는지는 안궁금한거냐...
내말이..
이거 원래 그러는건가요
학교 자금이 부족해서 그런거 아닐까요.
적어도 82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갔던 내 기억으로는 그당시 중고등학교 일부에서 성냥갑으로 대변검사했던 것이 맞습니다.
존내 오래전이군요.
우리는 비닐봉투와 종이봉투를 주었지요. 비닐에 변을 넣고 봉하고 종이봉투에 넣고 또 봉함.
그렇게 두번 봉해도 은은히 향(?)이 퍼져나온다는..... ㄷㄷㄷ
마지막 단어는 제길이란 뜻에서 쿠소!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당.
둘 다 됩니당
말장난이겠죠?^^;
추억의 대변검사군요 다들 경험 있으시겠지만 학교 화장실에서 대충퍼서 넣기(퍼세식이라서 가능)
친구들끼리 믹스해서넣기...뭐 다들 해보셨지요?
아뇨.;
평생 안하던 '신문지에 변누기'를 저때만 다 해봤죠;
.... 그런걸 해보셨군요..... -_-;;;;
나름 저도 나이가 있어 대변검사야.. 꽤 해봤지만......
그런것 까진...
아...대변 검사....제가 국딩때 연례 행사로 하던 물건이군요.
....그렇게 추억은 없지만....
글쓴이, 보아하니 40~50대 분이신 것 같군요. 그보다 이후에 태어나신 분이라면, 학교에서 저런 걸 하나??
90년대까지도 했습니다 *^^* 님이 아직 어리신 듯
96년 초등학교 졸업했는데..
아..
2학년 3학년인가 까지 했었음
꺄앙, 리라쨩 너무해요~ 응가랑 화장실 얘기는 시로시로~ 꺄앙~>_< 상상해버리쟝~; 미오미오~
(초면에 실례했습니다!)
흠... 88년도에 국민학교 입학했는데
그때 저희학교도 성냥갑에 담아오라고 하더군요.
집에 흡연자가 없는 관계로 성냥갑이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 한복을 만드시는 관계로 커다란 성냥통은 있었습니다만 -_-;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팔각이 아닌 사각통에 담긴
성냥인데 통의 사면이 전부 마찰할수있는 인이 붙어있는 면이었고
뚜껑은 노란색에 전화기가 하나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단한것이 뚜껑이 무려 자동으로 닫히는 구조.
종이로 만든 성냥통 주제에 대단한 물건이었지요.
어쨋든... 그런 성냥통이 몇 개 있었으므로 여기에 담아가느냐
아니면 동네 점방에서 20원 주고 성냥을 한통 사오느냐를
가지고 한참 고민하다가... 두꺼운 도화지로 성냥통을
제작해버렸습니다. 두꺼운 도화지도 20원. 당시 생각으로는
이쪽이 훨씬 멋있다 였습니다만 지금 생각하면
성냥을 샀으면 안에 든 성냥은 할머니께서 사용하시면 되니까
그게 더 이익이지 않았나 하는 무의미한 망상에 빠져있습니다. ㅋㅋ
초등학교 2학년때인가 3학년때인가 부터는 하얀 종이봉투 안에
얇은 비닐로 된 봉투가 하나 더 들어있는 물건을 주더군요.
종이봉투엔 학교. 학년. 반. 번호. 이름을 기재하는 란이
있었는데 연필로 글씨를 쓰다보면 칸이 모자라서 고생한 기억도...
종이봉투 뒷면에 적혀있었는지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건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주의사항도 있었죠.
"성냥개비로 대변을 채취할때는 황이 묻지않은 손잡이 부분으로 한다."
비닐봉투에 대변을 담아서는 그 끝을 실로 꽉 묶거나 했는데
저는 할머니께서 한복 만드실때 사용하던 촛불로
그 끝을 지져서 봉인해갔던 기억도 납니다.
요즘이야 그런 기생충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에도 어려운 가정은 아이들이 기생충에
걸리기가 일쑤였죠. 대변검사 후에 반에서 몇명은 알약을
받아먹었는데 한두개만 받는 아이도 있고 대여섯개를
받아가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웃겼는데
지금 생각하면 반에서 가장 형편이 어려웠던 친구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들 뭐하고 사나?
잡담이 매우 길어졌군요 ㅋㅋㅋ
대부분 위에 있는 이야기잖아요!
라고 하려고 했는데 끝으로 갈수록 20세기 소년의 가슴이 젖어듭니다.
21세기까지 학교를 다닌 것들은 몰라! [편견]
2000년 가을에 졸업했으니 20세기에 학업을 마쳤네요. 아 다행인건가. 생각해보니 별로 오래 지나지도 않았네..
김사장님 2000년부터 21세기이므로 무효입니다
아슬아슬하게 21세기 졸업이네요...
그러면 했으려나 그런데 전혀 전혀 꺠끗하게 깔끔하게 완벽하게 기억이 안 나네요
여기서 싸우면 리라짱의
'내 블로그에서 똥 이야기로 싸우지 마!'
라는 반응을 얻게됩니다 네네
(에잉.. 예전 공포별관(?)에 증거가 있는데.. 리라짱이 책을 발행하며 삭제하는 바람에..)
대변검사는 요세도 합니다. 병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