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전통예능극 가부키.  이 가부키 문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데에는 한 남자의 큰
공헌이 있었다.

태평양 전쟁 패배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이후 그 항복조인을 위해 맥아더가 일본에 도착하기 이틀 전,
사전조율을 위해 연합군의 선발대가 일본측 협상단과 회담을 가졌다. 당시 점령당하는 입장의 일본측 협상단
사이에는 상당히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 때, 맥아더의 비서관 중 한 명이 일본인 기자단에게 유창한 일본어로 이렇게 물었다.

「우자에몬은 건강합니까? 그 사람은 요새 뭐하고 지냅니까?」

당시 유명했던 가부키 배우,이치무라 우자에몬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너무나도 뜻밖의 질문이었기에 일본인
기자들이 그것을 깨닫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바로 그 비서관이 훗날「가부키를 구한 남자」로 알려진 포비안 바워즈(Faubion Bowers)였다.

그는 전쟁 직전, 우연히 방문한 가부키 국립극장인 가부키좌에서 봤던 연극「츄신구라」에 마음이 뺏겨,
전쟁 직전까지 일본에 머물며 가부키 관람에 몰두했던 것이다.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 총사령부는 당시 가부키에서도 종종 그 색이 드러나는 일본 문화의「봉건적 충성심」
이 군국주의를 초래했다고 판단, 가부키로 대표되는 고전 예능을 일체 금지시키려고 했다.

거기서 등장한 것이 맥아더의 서기관이었던 바워즈. 일체금지 대신, 제한 상연 목록 이외의 공연은 인정
해주자, 라는 의견을 강력히 주장해 그것을 관철시켰으며 그 제한 상연 목록도 이후 가능한 한 줄여가도록
노력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최대의 난관「가나데혼추신구라」. 가부키 3대 명극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어쨌든
내용상 복수극이었으므로 연합군총사령부에서는 허가를 금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바워즈는 이 멋진 인간
드라마(그가 최초로 봤던 가부키 연극이 그것이었기도 하고)가 그렇게 묻혀선 안된다고 생각하여 주위를
설득, 쇼치쿠 가부키 극단에 우선 허가를 내주기로 했다.

그러나, 바워즈는 허가를 낼 때 쇼치쿠에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그 조건은-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소집하여 연기할 것」

그 말과 동시에, 쇼치쿠 사장이었던 오오타니 다케지로에게 메모가 전달되었다. 거기에는 역할에 맞춘
배우명이 빽빽이 써 있었다.

엔야판관 역을 칸사이 가부키 최고의 명배우 나카무라 바이교쿠, 고노모로나오 역을 기쿠고로(6대),
유라노스케 역을 마츠모토 고시로(7대)라는, 가부키 애호가라면 한번쯤 꿈을 꿔보았을 법한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올스타 캐스팅.

···물론 이 모든 것은 바워즈가 개인적으로 정말 보고 싶었던 드림팀을 구성해본 것w


그러나 어쨌든 당시로서도 확실히 이 멤버는 정말 다시 모이기 힘들 최고의 드림팀이었던데다 오락에
굶주려있던 당시 대중에게는 대인기를 모아 연일 초만원 사례를 이뤘다고.


이후 시간이 흘러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체결되었고 일본이 독립을 회복한 후인 1960년. 드디어
가부키의 미국 공연이 추진되었다. 

그 때 문제가 된 것이 또「가나데혼츄신구라」

극 중에 할복 장면이 있는 것에 대해 당시 일본 외무성이「이는 일본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내용이니만큼
외국에서는 그 장면의 연기를 불허한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던 것이다. (하여간 외무성이 무능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이대로는 극의 하이라이트라고 할만한 할복 장면이 빠진 츄신구라를 공연하게 생긴 참에, 역시 구세주가
뉴욕에서 날아왔다. 현직에서 물러나 뉴욕에 살고 있던 포비안 바워즈가 그 소문을 우연히 듣고는 워싱턴의
일본 대사관에 항의방문한 것이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까! 할복 장면이 빠진 츄신구라라니! 그건 더이상
   가부키가 아닙니다!」

전직 연합군 총사령부 고관의 일갈에 외무관료들은 침묵했다.

덕분에 모든 연극은 본래 줄거리대로 연기되었고, 대호평, 미국의 관객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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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라ONLY 2007/10/26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꺄아~ 1등///

    그런데 바워즈 너무 멋진 거 아녜요?!
    일제 시대때도 저런 사람이 일본에 있었다면!

  2. Kagoon 2007/10/26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권력을 가진 미쿡오타쿠(?)는 무섭군요,;

  3. 라임에이드 2007/10/26 1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다른 권력층 미국 오타쿠의 이야기
    http://sonnet.egloos.com/3284795

  4. 세뇌 2007/10/26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점은

    권력과 재력을 지닌 오타쿠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것
    우리 모두 출세하자

    • ㅜㅜ 2007/10/27 0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꼭 출세해서 서울 시청 잔디밭을
      훈남밭으로 만들고 서울시가 전세계 X이들의
      성지가 될수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게X퍼레이드 오프닝은 서울시가 주도하는 겁니다.

    • 아스나리카 2007/10/27 1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ㅜㅜ님 응원하겠습니다 하악하악

  5. LESS 2007/10/26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ㄴ그런 교훈이 담겨있던 겁니까 ㄱ-

  6. MunFNS 2007/10/26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권력을 가진 오타쿠는 무섭지요. 엑셀사가에서도 그런사람이 한명 나오고 -┌ 자기 취미에 권력을 펑펑 써대니까 정말 무서운 사람들임.

  7. KKND 2007/10/26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기가 좋아하는것을 지켜낼만한 능력이 있었던 사람 이야기네여 교훈적인듯

  8. coolbrain 2007/10/26 14: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권력을 가진 오타쿠보다
    권력 오타쿠가 더 무섭지 않을까요

    여의도에서 격투기도 하던데 걔네들은... (ㄷㄷㄷ)

  9. 2007/10/26 14: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0. www 2007/10/26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새 국내 인터넷 용어에서는 덕후 = 매니아가 된 느낌입니다만

    원래 매니아가 덕후는 아니죠. 각종 분야 매니아야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을 겁니다.

  11. www 2007/10/26 1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저는 이런 세태를 보면서 취미, 여가 생활에 에너지 쏟는 것은 쓰잘데 없는 일이고 잘 먹고 잘 사는 데, 돈 벌어 먹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속물 근성이 반영되는 것 같아 씁쓸함을 느낍니다.

    • r 2007/10/26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속물근성이라기보단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뿌리깊은 인식입니다. 개인의 취미 생활이란 것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죠. 일(또는 공부)+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인정하는 두 가지 가치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어서 은퇴하여 조촐하게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결국 돈은 뭘 위해서든 필요한 것이죠. 사회적 인정이든, 먹고 사는 거든, 취미생활이든.

  12. 사이머넌 2007/10/26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이 결국엔 킹왕짱' 이라는 내용으로 보는데요.

    어디가 오타쿠라는건지.... 그럼 탈춤 좋아하면 한국오타쿠입니까? 사람들이 말이야 개념이 있어야지.

    • 작은악마 2007/10/26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 오타쿠가 아니라

      탈출 오타쿠죠...


      뭐 암튼 오타쿠를 그리 나쁜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 저에겐 윗분들이 개념이 없어보이진 않습니다만..

  13. 그럼 2007/10/26 15: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타쿠는 확실히 부정적인 의미 아닌가요?
    오타쿠=안여돼 라는 공식이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인식되어 있고,
    그렇다면 나는 고서를 사고 초판본을 사고 특별 제본 판의 책을 사는 데에
    상당히 많은 돈을 지출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책 오타쿠야?

    • 랜디 2007/10/26 2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다만...오타쿠라는 용어가 싫다면 '책 애호가'로 불러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님도 다른 이들의 취미을 존중한다면 '게임 애호가','모형 애호가','애니메이션 애호가'로 불러주시길.

    • 코끼리엘리사 2007/10/26 2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론적인 오타쿠로는 책 오타쿠 맞습니다.
      전차남때 발표된 유명한 경제 보고서에서는
      자동차, 아이돌, 여행, 전자기기, 애니메이션등
      크게 8가지로 오타쿠를 분류한 바 있었고
      무언가에 깊이 빠져 좀 별난 사람이 되었다면
      본디 오타쿠라는 표현을 붙일 수 있습니다.

      단지 그것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된데에는
      취미에 강한 집착을 가지고 중독된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 사회성이나
      일본의 경우 엽기사건의 용의자가 오타쿠였으며
      메스컴의 보도가 오타쿠들을 '예비범죄자'취급하면서
      사회적으로 부정적 인식의 장을 열게 되지요.

    • Mirai 2007/10/27 0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타쿠는 일부 개념없는 사람 몇명과 언론이 만들어내서 인식이 그렇게 된 것뿐 자체는 범죄자를 칭하는 건 아니었지요;


      그런 마당에 우리나라엔 뭘 잘 알지도 못하고 이상한 면만 보고 그게 다인줄 아니 인식이 일본 이상으로 더 꼬였지요;

  14. ^^ 2007/10/26 1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책 오타쿠 이빈다

  15. huraijin 2007/10/26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등장인물을 미국오타쿠로 비유한건 '일본전통문화에 심취한 백인'같이 기스하워드처럼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기에 그냥 유머로 하신말씀같은데요.

  16. 아고몽 2007/10/26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취미생활과 일상생활 적당히 선을 지키며 열심히 즐겁게 사는게 킹왕짱이지요 ㅎㅎ

  17. 나나미 2007/10/26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공하자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18. 감청 2007/10/26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에서
    여자=된장녀
    취미 있는사람=오타쿠

    보통 성립된다고 여기죠. 안그래요?

    • Mirai 2007/10/27 0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그건 뭘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떠들어대는 그런 사람들 탓이지요.

    • 2012/12/14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그건 뭘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떠들어대는 그런 사람들의 탓이라고 책임전가하고 나몰라라하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탓이지요.

      정확한 뜻을 알고 있고 현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남 탓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계몰할 생각은 안해보시나보네요.

  19. 록차 2007/10/26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최강의 올스타로 이뤄진 공연을 보는 기분은 어땠을까요...-.-

  20. 어떤 의미로 2007/10/26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레스 적고싶은 생각은 없지만, 여하튼 이 글의 핵심은 '문화의 중요성'인것 같습니다. 비록 전쟁에서 패했지만 가부키라는 문화의 힘으로 무언가를 얻어냈다 뭐 그런 것이겠지요. 망하고 2000년이 지나도 전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는 로마제국이 떠오르네요. 역시 문화는 대단합니다

    • ^^ 2007/10/27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핵심'이라하기에는 너무 멀리 나가셨다 싶은 해석인데요.

      가부키로 대변되는 일본 문화를 전후 점령군에 일본 애호가(혹은 일본 오타쿠)가 있어서 지켜주었다.. 라는 것이죠.

  21. 크랏세 2007/10/29 1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결론은 힘있는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당신이 즐기는 취미도 권력을 가진다! 이정도인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