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무렵, 데스노트가 대유행했다. 그래서 나는 거기에 등장하는 'L' 같은 캐릭터가 멋지다고
생각해서 항상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눈만 동그랗게 뜬 채 항상 혀를 내밀고 생활하곤 했다.  생긴 건
전혀 그렇게 안 생겼지만 사실은 굉장한 실력의 해킹실력을 갖춘 것 같은 캐릭터를 학교에서 연출했다.

학교에서 PC 수업이 있으면, 제멋대로 커맨드 프롬프트를 열고 의미도 모르는 채 타이핑하며 해커를
연기했다. (물론 적당히 그럴 듯 하게)

그러자 옆 자리에 앉아있던 학생이

학생「오! 대단해! 이거 뭐야? 어떻게 하는거야?」

하고 말을 걸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 「응? 아, 난 해커야. 조금 이 PC는 유저 인터페이스가 나쁜걸ww」(나도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모름)

나 「대개 요즘 OS들은 너무 속도가 늦어ww 그래서 살짝 내가 손 좀 볼까하고」

아아 부끄럽다…너무 부끄럽다…
그렇지만 그 학생은 PC에 대해 잘 몰랐기에 여전히 호기심 가득인 얼굴이었다.

하지만 비극은 거기부터 시작이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입력했기 때문인지 이상한 윈도우가 떴고, 닫는 방법을 몰랐던 내 머릿 속에선

·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구한다
· 자력으로 어떻게든 해본다
· 이 PC, 고장났는걸 하고 대충 둘러댄다


의 선택지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여기서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내 캐릭터가 무너질까 두려웠다.


학생 「왜그래? 빨리 해! 이제 슬슬 발표시간이야」

나    「아, 아. 잠깐 실수를 했을 뿐이야. 잠시 후면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어」

하고는 말했지만, 왠지 닫는 버튼을 눌러도 윈도우가 닫히지 않았다. 그렇게 초조해하는 사이, 내 발표차례가
왔다.


선생님 「다음」

나 「음, 음~음~음…
  (눈치채지 못한 척, 필사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선생님 「뭐하는거야? 너 차례잖아」

나  「아니, 저…」

선생님이 나에게 쿵쾅쿵쾅 접근했다. 이미 내 머릿 속은 새하얗게 되어버렸다.  

선생님 「응?…다운됐잖아? 너 뭐한거야?」

모두가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꾸중을 듣고, 뒤에 있던 다른 학생이,

「무슨 개폼을 잡는거야www 컴맹같으니ww」

그 말에 옆에 앉았던 녀석마저 킥킥 웃었다.

나는 울상이 되어 변명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교무실로 불려가서 1시간이나 설교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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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나미 2007/12/04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1등!
    그나저나 중1때가 데스노트 유행이라니... [먼산]

  2. Grain 2007/12/04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불쌍.

  3. 코코넛 2007/12/04 0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못미.................

  4. 퍼프 2007/12/04 0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2병이라기보다는 병에 걸린 중2...

  5. 라면덮밥 2007/12/04 0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혀는 내밀지마;ㅂ;

  6. RR 2007/12/04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ㅠㅠㅠㅠ

  7. 타마누님 2007/12/04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둘리를 생각해 버렸다...

  8. Karinn 2007/12/04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어릴때 저런 짓 자주 했죠.
    프롬프트 열고나서 dir이라던가 cd..같은 거 연타..(.....)

  9. 2007/12/04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command는 요긴하게 쓸데가 은근히 많죠.
    회사에 있으면서 새삼스레 cmd모드의 위력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랄까요...

    아, 옛날에 도스시절은 정말로 즐거웠지... 라면서 과거회상을 한다거나.

  10. 윤정호 2007/12/04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이러스가 조기 자폭해버려서 다행이다…

  11. 엘숑 2007/12/04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ㅅ;불쌍...

  12. steelord 2007/12/04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스가 최고에요.
    땡스빌은 윈도우를 만들고 유통시킨 벌로 지옥에 떨어질 것임. 아앍! 또 블스야!

  13. 감청 2007/12/04 1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스 명령어 외우라면...

    아마 초딩이고 중딩이고 컴퓨터는 만질생각을 안할껍니다<

  14. 윤정호 2007/12/04 1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스 명령어 외우기 : M 하나면 오케이 [...]

  15. 잭 더 리퍼 2007/12/04 1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에 겨우 1시간 설교받은거 가지고 '이나'라는 표현을 쓰는게 우습네요. 풋

    • 감청 2007/12/04 1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1시간이 우습게 여겨지신다니, 얼마나 문제아이신지는 알겠...

    • 잭 더 리퍼 2007/12/04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울산 성○고에 이○섭이라는 독일어 선생님이 계셨습니다(사립이니 아직 계실지도)
      고2때 담임선생님이셨는데, 인간으로서, 교육자로서 정말 훌륭하신 분이기 때문에 존경하고 있습니다.
      다만 무서운건 교회관련 화제와 설교입니다. 하나님 얘기가 나오면 열변을 토하시는건 둘째치고, 문제 있는 학생을 절대 때리지 않고 설교를 하십니다.
      제가 알기로 11시간 설교 기록을 보유하고 계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졸업한지 10년이 다되어가니 기록을 갈아치우셨을지도 모르겠군요. 설교 끝날때까지 학생은 오도가도 못하고 서있어야 된다는거[...]

    • 익명 2007/12/04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울산 ○신고출신의 그분이시라면 아직 계십니다.
      (저는 정작 옆동네 울산고등학교 출신인데...어떻게 알지?)
      성신고에는 그분 외에도 유명하신 선생님들 많죠.
      요샌 울산도 평준화가 되놔서 다들 천사처럼 변하셨다고들 합니다만...

    • ^^ 2007/12/08 0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제일고를 졸업한 97학번이니 저랑 연배가 비슷하시군요.
      그 설교로 유명하다는 선생님 이야기는 성신고 다니던 친구를 통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여름방학때 그 친구랑 성신고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했던 기억도 문득 나는군요.

  16. 미소녀 2007/12/04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너무 불쌍해 ㅠ.ㅠ

  17. 아아... 2007/12/04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다 부끄럽다...
    ....

  18. 흑변마웡 2007/12/04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샘불러나 기계어 만지는 모습만 보여줘도 아무말 못할텐데... 하긴 그게 가능하면 진짜 대단하지만.

  19. 아스나리카 2007/12/05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쌍하다ㅠㅠ

  20. 143 2007/12/06 1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데스노트가 저 고2때였나 나왔고, 대학교 2학년때 완결 났을걸요.. 그런가?;
    아무튼 3년쯤 걸린 듯. 그리고 전 군대에 가기 직전입니다 십라..
    아무튼 중1때 데스노트가 유행했으면 지금 고등학생이겠군요-_-

  21. 메로메로 2007/12/07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딱 저랑 같은 나이대인가 보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