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6월 22일, 2차대전 독일-소련 간의 전쟁을 한달 앞둔 그 시점, 바르샤바와 모스크바의 중간도시
민스크는 히틀러의 전격전에 이미 함락되었다.

이지니에프 아리스코비치는 유서를 쓰고 전투에 참가했다. 하지만 정작 그 혼자 살아남았다. 그는 1945년
독일이 항복할 때까지 포로로서 가혹한 수용소 생활을 보냈지만,  간신히 조국으로 귀환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소련의 패배기록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스탈린에 의한「이지니에프는 친독협력자, 배반자」
라는 누명과 시베리아 유배였다.

이윽고, 시간은 흘러 스탈린이 실각. 뒤를 이은 흐루시쵸프에 의한 스탈린 비판 덕분에「나치 독일에 대해
용감하게 싸운 사람들」로서 이지니에프는「소련 최대의 배신자」로부터, 하루 아침에「소련 최대의 영웅」
으로 떠받들여진다. 

소련은 손바닥 뒤집듯이 갑작스레 그를 칭찬하며 무수한 훈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이지니에프는 영웅이
되었다는 공명심에 들뜨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고 주눅이 들지도 않은 채

「나는 그저 한 명의 공산주의자. 한 명의 노동자에 불과하다」
 
라며 수많은 영웅칭호를 버리고 노동자로서 철도정비를 하며 인생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만년을 맞이했을
무렵, 그의 삶에 큰 사건이 또 하나 일어난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였다. 


「내가 없으면, 누가 열차를 작동시키지?」

그는 단지 그 말만을 반복하며, 도망친 동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혼자 피난행렬로 가득한 열차를 계속
가동시켰다. 그는 방사능 오염지역을 수십, 수백회나 왕복했던 것이다.

이윽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는 피를 토했다.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의사조차「그를 치료하자면 내가 위험하다」라며 치료를 거절할 정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붕괴해가던 소련이라는 국가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었는지도.

「한 명의 노동자」로서 계속 일을 하며 번 그의「루블」은, 소련 말기의 엄청난 인플레에 의해 하룻밤에
휴지고각으로 변했고 그가 받은 수많은 훈장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잡동사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지니에프는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

병상의 이지니에프가 소련에 대해 남긴 마지막 말이 있다.
 
「난, 죽음에... 굴하지 않는... 안녕, 조국이여」

1991년 12월 21일. 이지니에프, 방사능 증후군에 의해 사망.
그것은 기이하게도, 그가 이별을 고한 조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소멸한 날과 같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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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15 2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등

  2. Even_If 2008/06/15 2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ㅠㅠ

  3. elderis 2008/06/15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큼한 3등

  4. 0 2008/06/15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19가 생각나네요. 고장난 핵잠수함을 수리하기 위해 원자로로 자원해서 들어갔던 군인들

  5. alkin 2008/06/15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물나네요 ㅠㅠ

  6. () 2008/06/15 2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아..... 진정한 히어로다;;; ㅅㅂ;;; ㅠㅠ

  7. ??? 2008/06/15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국과 함께 눈을 감은 사나이로군요

  8. 어익후 2008/06/15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답답하기도 하네요..에고..

  9. sai 2008/06/16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게 바로 바보같은 사나이의 훈훈함 ㅠ_ㅠ

  10. 칠색 2008/06/16 0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슈바...ㅠㅠㅠㅠㅠㅠ진짜 히어로네요...블로그로 퍼갑니다 ㅜㅜ

  11. ~~ 2008/06/16 0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인지 의문이군요 .. 저정도 미담이면 알려질법 한 이야기인데

    처음 듣는것을 보면 스티븐 비게라 생각이나는 군요...

  12. 마줄 2008/06/16 0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남자. 사나이. 수컷! 당신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내 남편이 저런 식으로 산다면? 처음에는 반했겠지만 결국 진절머리 나서 총으로 쏴죽이고 나도 따라 죽겠음.

  13. 우홋 2008/06/16 0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괴담천국의 1994녀 폭발물 배달사고도 12월 21일이었던것같은데 ... 라는 잡생각이 들었습니다 .. ㅈㅅ

  14. 루넨 2008/06/16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라님... 휴지고각 -> 휴지 조각이요..;;
    ...너무 우직하고 견실한 사람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죠... 흠...

  15. 꼬마 2008/06/16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나이!ㅠㅠ

  16. 크레멘테 2008/06/16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저 열혈바보..ㅠㅠㅠㅠㅠ

  17. Rail. Sys. 2008/06/17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러시아어 이름이 일본어 중역이 되어서 정확하지가 않은건지 찾아봐도 나오지 않네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몇몇 스펠링을 계속해서 넣어볼 생각입니다만...

  18. .... 2008/06/17 1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들어낸 이야기 같은데.... 뭐, 스토리자체는 감동깊지만.

  19. 픽션.. 2008/06/18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 것 같습니다.

    일어 웹에서도 모두 본문의 일화만 나와있고 자세한 사항은 전혀 찾을 수 없네요.

  20. 하루 2008/06/23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국생활 해본결과 애국자는 한국에만있는게 아니라
    어느나라에도 있더군요 -0- 나라를사랑하는사람은
    어디에나 있는듯

  21. 하루 2008/06/23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국생활 해본결과 애국자는 한국에만있는게 아니라
    어느나라에도 있더군요 -0- 나라를사랑하는사람은
    어디에나 있는듯

  22. 딸기맛미역 2008/07/02 0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84의 복서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