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부터 알던 아저씨 이야기.

그 아저씨는 아버지의 친구였다. ...라고는 해도, 몇 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
그런데도 왜 그 아저씨가 어릴 적부터 기억에 남아있냐면, 그는 반신마비에다 휠체어까지 타고 있어서
임펙트가 강했던 것 같다.

내가 중학 2학년때, 아버지가 공장의 기계에 손이 끼어 왼손을 잃었다.
아버지가 입원하셨을 때, 그가 병문안을 하러 왔다.
그리고 그가 봉투로부터 꺼낸 것은 장난감 매직핸드.
아무리 장난이라고는 해도, 나는 어린 마음에「너무 심한 장난이잖아!」하면서 화를 낸 것을 기억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오히려 그 장난에 매우 유쾌하게 웃으며 그와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기가 막혀 병실에서 나왔다. 그 이후로 그와 만나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췌장암을 너무 뒤늦게 발견한 탓이었다.
장례식날 밤, 그를 또 보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때의 일을 맘에 두고 있었는지, 가볍게 인사만 했을 뿐 이야기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가 휠체어에서 기어서 내려 아버지의 관에 달라붙어 통곡까지 하던 것은 놀랐지만,
결국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끝끝내 그와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올해 나는 성인식을 맞이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불량학생이 된 나는 어머니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오랫만에 어머니와 긴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는 그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버지와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의 오랜 친구라는 것.

그리고 아버지 공장의 경영이 악화되었을 때 그가 집과 땅을 팔아 도와준 것,
그가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지만 난산 끝에 아내가 죽은 것,
남자 혼자 힘들게 아이를 키웠지만 근무 중의 차사고로 2개월간 혼수상태로 있다가
끝내 하반신 마비가 되어버린 것.
그때 그의 1살배기 아이가 바로 나라는 사실.

오늘, 그를 만나러 다녀왔다.
그의 집에는 내가 아기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사진이 벽에 많이 붙어있었다.
나는 별로 싹싹하게 잘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아직 시간은 충분히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기까지 시간은 별로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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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oel 2010/01/14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슬프잖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

  2. 부케 2010/01/14 0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등...!

    슬프네요

  3. 목짧은기린 2010/01/14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사람의 돌아가신 양아버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성공은 어떤 친구를 갖느냐에 달린 것 같기도 합니다.

  4. 선배거긴안돼 2010/01/14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왜 장난감 매직 핸드를 줬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안나오네요...

    결국 장난이었던건가요?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추억의 물건이라던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휠체어 아버지에게 장난감 다리를

    선물로 줬었다던지... 그런걸 생각했었는데

  5. 티우 2010/01/14 0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감동적인 반전이네요.

  6. aa 2010/01/14 06: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구라 냄새가 너무 나는데 이걸 믿는 사람이 존재한다는게 세상이 아직도 따뜻하다는걸 알 수 있게 해준다..

    • 이런이런 2010/01/14 0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실에 있는 일이 아니라서 감동할 필요가 없다면

      이 세상에 영화, 소설 등은 사라져야겠죠

      사실이든 아니든 이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인걸요

    • 지나가다 2010/01/14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세상에 수십억씩 사람이 살다보니 구라보다 더 구라같은 현실이 종종 있지 말입니다...

    • 흠... 2010/01/15 0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믿어서 손해볼 일 없을때는

      마음껏 믿으며 공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도 좋습니다...

      굳이 파헤쳐서 무엇하나요...

    • 드라마 2010/01/15 1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영화에서나 볼듯한 이야기가 현실속에 넘쳐나죠.

      '사랑과 전쟁' 그거 다 실화가 바탕이라니깐요.
      게다가, 건너건너 듣다보면, 비슷한 내용 있다는

    • 송이버섯 2010/01/16 0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온실속에서 살고 계시는군요.
      뉴스만 봐도 소설이나 영화보다 현실이 더 하구나 싶은 요즘인데.

  7. 카작스 2010/01/14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실은 소설보다 더 기이하다고 하죠

  8. 미레일 2010/01/15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