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같은 아파트 사람이 이사할 때 전자렌지를 버리고 갔다.
그 레인지는 오븐 기능이 있고, 우리 집 것보다도 새 것인데다 고성능.
정확히 온도가 조절되는 레인지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이라는 생각에
난 살그머니 우리집 전자렌지를 버리고, 그 레인지를 주워 왔다.

우리 레인지는 15년 이상 사용해왔지만 고장난 적도 없고, 아직도 현역이었기 때문에
조금 버리기 아깝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낡은 레인지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재활용품 코너에는 넣지 않았다.

그랬더니 왠지 다음 날 세탁기가 세탁하는 도중에 멈춰버렸다.
버튼에 불은 들어오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전원을 뽑고 다시 켜도 안되고, 이미 안에 가득 찬 물과 흠뻑 젖은 세탁물들...어찌할 바를 모르게되었다.

새 PC를 사면 이상하게 전에 쓰던 낡은 PC의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경우는 자주 있다.
그렇지만 전자렌지와 세탁기는 장르가 다르다. 왜 안 좋아지는가?
전자렌지를 버리게 되면 세탁기는 우리 집 가전제품 중에서 최고참이 된다.
혹시 레인지와의 동료의식인가? 어느새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단 말인가?

뭐, 그런 바보같은 일은 있을 수 없다, 생각은 하면서도 아직 쓰레기 수거를 해가지 않은 전자렌지 안의
회전 접시만 갖고 돌아와 세탁기 위에 올려두고 그 날은 잤다.

다음날, 조심조심 전원을 넣어 보자, 움직였다. 아무런 문제도 없고, 세탁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저 오래 멈췄으므로 기계 안에 들어간 물이 말라 움직이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라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좋다. 레인지의 회전접시는 세탁기가 고장날 때까지 근처에 놓아두기로
했다.

트랙백 주소 :: http://newkoman.mireene.com/tt/trackback/331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ㅋㅋ 2010/05/13 2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히히히히

  2. 으네 2010/05/13 2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ㄷㄷㄷ 고참끼리 통하는 건가요!
    잘 보고 갑니다~

  3. 휘바할배 2010/05/13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낡은pc 상태가 안좋아진다기보다는 좋은pc에 길들여져서
    상대적으로 느리게 보이는거같음

  4. 이거슨 2010/05/13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이다
    눈물이 날 정도..

  5. 사탕꽃 2010/05/13 2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전 저런거 믿어요!
    왠지 물건도 오래 쓰면 정령이 깃들것 같아서..
    복사기 같은거 할 때 잘 안되면 복사기에게 잘좀 부탁한다고 굽신거림;
    친구들은 이런 나를 바보같다고 하지만 상관없어!
    산타도 있을거니까!!

    • 23 2010/05/13 2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귀여우시네요ㅋㅋ. 진심으로 귀여우십니다.

    • 흠... 2010/05/14 0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타는 당연히 있습니다

      전 지구인의 기도도 동시에 듣는 존재가 있는데

      하루쯤 선물 돌리는 산타야 우습죠

    • 그레아 2010/05/14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믿어요.
      프린터가 말썽이라 어르고 달래서 성공

    • ㅇㅅㅇ 2010/05/14 0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생이 만지면 바로 망가지는 컴퓨터도 내가 만지자마자 멀쩡하게 작동하는 것도 똑같은 원리인 것 같아요. 잘 얼러주고 예쁘다 예쁘다 하면 고물 컴퓨터도 잘 돌아가...지만 엄마한테 다 고쳤다고 드리자 마자 사망. 실컷 포맷하고 프로그램 깔고는 욕만 먹었습니다...

    • Belle 2010/05/14 0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랄까요...

      친구가 컴터 고장났다고 매일같이 투덜거려서 가보면 멀쩡하게 잘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물론 그럼 나 갈께 ㅃㅃ 하고 버스타면 전화로 야 또 안된다~ 라는 그런 느낌?

    • sr 2010/05/14 0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집 컴퓨터도 뜬금없이 잘 돌아가다 블루스크린 뜨길래,
      잘 꽂혀있는 선을 하나씩 어루만져주면 (제가 컴맹이라 그런지 몰라도 흔들림도 없이 잘 꽂혀있는걸 만지작..) 한동안 아무문제가 없어요.
      근데 기사아저씨 부르면 원래 더 잘돌아가야하는데 얜 더 안켜져요.
      남자가 싫은가봐요.

    • -_- 2010/05/14 0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컴퓨터 기사 아저씨의 비밀을 폭로하는 댓글이 생각나는군요. 아마 sr님의 컴퓨터는 그것 때문에 기겁을 하고 정신적 충격을 받아 그런 듯 합니다.

  6. 유우 2010/05/13 2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부끄러워서 어디에 얘기하고 다니진 않았는데 이런분들이 은근 있으신것 같네요. 오래쓰면 정들고 뭔가 물건이라기보다 동료같은 느낌이 들어서..

    고등학교 시절 학교 매점 자판기가 자꾸 지폐를 뱉어냈던 적이 있습니다. 제 친구들 5명이서 돌아가면서 넣어보는데도 안되길래 제가 다가가서 자판기를 쓰다듬으며-_- "이보게 자네, 한번만 이걸 받아주지 않겠나?" 그러자 들어가는 지폐 오오 통했다 오오

    더 어릴때는 오래 쓰던 물건을 버릴때가 되면 쓰레기통에 넣기전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거수경례를 붙여주곤 했습니다.

    이렇게 한지도 꽤 됐네요. 요즘은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 조금 슬픕니다.

    • 그레아 2010/05/14 0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거 좋네요...저도 물건 버릴때 수고했다는 말이라도 해야겠어요

    • 아아 2010/05/14 0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람들 진심으로 귀엽다..부끄러워하실 필요 전혀 없음!
      나도 다음부턴 저래야지.

    • 사탕꽃 2010/05/14 0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와 저도 그래요! 나만 그런거 아니었구나~!ㅎㅎㅎ
      오래된 안경닦는천 같은거 버릴 때나, 오래 쓴 칫솔같은거 버릴때, 수고했다고 말하면서 버려요. 사실은 버리는것도 좀 미안해요; 잘 모셔줘야 할 것같은..;ㅠㅠ
      나를 위해 수고해준 애들인데;

  7. 흠... 2010/05/14 0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저런 경험 있음

    핸드폰을 신형으로 바꿔볼까 하고 생각하자 마자

    이전의 핸드폰이 고장나 버렸다는...

  8. 543 2010/05/14 0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이 전형적인 미신 효과!

  9. 유우카 2010/05/14 0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트북을 사서 설치하면서 최애캐 이름으로 입력하는건
    역시 다른거겠죠(......)
    하지만 3년째 고장한번 없이 버텨줘서 감사합니다 ㅜ_ㅜ
    보통 여학생들처럼 노트북 가방에 챙겨준적 없이
    숄더백에다가 쳐박쳐박하면서 들고다닌게 마음이 좀 찔리네요(..)

    • 저두 2010/05/14 0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두 랩탑에 이름붙이는데...☞☜ 친구들에게 그말했다가 대박놀림당했어요 ㅠ.ㅠ

      밤낮을 가리지않고 주인님을 위해 성심성의껏 봉사하는 착한 랩탑에겐 이름정도 붙여줘도 될듯요 ^^ 글구 습기나 충격문제도 있으니 외투한 장 정돈 입혀주세욤... ^^ (전 제로숔)

  10. 일격살충 2010/05/14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건 버리는 거 정말 싫어합니다.
    왠지 그 물건을 쓰던 예전의 추억도 함께 버려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책장에 초등학교 때 쓰던 공책들이 아직도 남아있네요.

  11. 코끼리엘리사 2010/05/14 0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은 흥이 없는 마지레스 하자면 아시아권의 세계관 중에는
    오랫동안 정을 들여 사용되어온 물건에는 혼이 깃든다고 봤죠.

    우리나라식 도깨비가 그러한 부류였으며
    일본은 그 사상을 기본으로 한 신도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 2010/05/14 0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꼬비꼬비에 망태할아버지니 깨진사발이니 은반지니 하는게 나오는건가요...아 꼬비꼬비 보고싶네- -

    • yui88 2010/05/14 0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라색 우산을 '할멈냄새난다'며 버린 것은 이제는 좋은 추억입니다. 그 날 밤 할머니는 울었습니다. 콩나물도 울었습니다. 그리고 우산은 지금 제 옆에........서 헬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12. asdf 2010/05/14 0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사실은 새로 줏어온 전자렌지가 전기를 너무 먹는게 이유일 듯..

    어디선가 들은 얘긴데, 일본은 집에 들어오는 최대전류(?)가 대체로 낮다더군요

    • 코링크 2010/05/14 1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기를 너무 많이 먹으면 다른 전자제품의 동작이 멈추는게 아니라 차단기가 내려가지않나요?

    • asdf 2010/05/16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차단기가 허용가능한 최대전류보다는 아래지만, 실제로 집으로 들어오는 전류보다는 높으면 그런 일이 발생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일본에 사는게 아니라 확실치는 않지만요 ㅎㅎ;;

  13. 닷쥐 2010/05/14 04: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니미즘..이라고 치부하기엔 가끔 맞는 사례가 생겨서..

  14. Lunatic 2010/05/14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묘하게 부끄러워서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있었는데 나같은 분들 많구나...

    가끔 전자 기기들한테 "너 오늘은 또 왜이러니이.. 언니 바쁘단 말이야." 하면서 투정부리면서 말거는데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깜짝..

  15. 김왕장 2010/05/14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이 모든건 냉납이 대부분의 원인임...나쁜 냉납. ㅠㅠ

  16. a군 2010/05/14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름까진 아니더라도 말붙이는건 자주 하는 편이죠..특히 컴퓨터.

    • 김왕장 2010/05/14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해합니다. 저도 자주하는 편이죠.

      '아 x발, 똥컴 왜 뻗고 지x인데!!! 아 염병!!'

    • demian 2010/05/15 0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왕장님 그게 아니잖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7. 흙탕물 2010/05/14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뽑은지 3년만에 70,000km를 돌파해버린 내 차에게도

    장거리 뛰고 나면 핸들을 두드려주며 "수고했다." 라고 말하곤 했는데...

    아내가 그걸 보고 웃으면서도 나중엔 따라하더군.

  18. ㅇㅅㅇ 2010/05/14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모두 라이크라ㅇ프를 합시다

  19. retina 2010/05/15 0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왠지 훈훈한 댓글들이네요. ㅎ

  20. 류우카 2010/05/15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01판이라면 전자렌지X세탁기냐 세탁기X전자렌지냐...가 나왔겠죠?

  21. 김근성 2010/05/16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제 엠피에 '김나노' 라고 이름 붙여놓고 (나노 4세대)

    제 동생이라고 했는데

    친구가 그거보고 비웃었던 기억이...

  22. 나그네 2010/05/27 1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 물건이 10년 이상 묵으면 귀신이 깃들기 쉬워진다네요. 그래서 버려진 물건은 함부로 주워쓰면 안 된다고들 하더라구요. 물건이 별로 예쁘거나 하지도 않은데 눈길을 끈다면 그 안의 귀신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