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루즈벨트
 
측근으로 다수의 소련 스파이를 거느린 공산주의자. 어머니가 중국에서 자란 탓에 비정상적인 친중감정의
소유자. 적대국의 도발 행위에 넘어가 공약을 깨고 전쟁에 참전, 많은 국민들의 생명을 빼앗았지만 사회
주의 정책으로 경제를 회복시킨다. 훗날 소련과 40년 가까운 냉전 상태를 만든다.


처칠

세 끼 밥보다 전쟁을 더 좋아했던 리처드 1세 같은 사람. 내정은 개판, 오직 전쟁에 흥미를 느꼈던 것도
그와 같다. 그렇지만 군사적 재능은 없고 갈리폴리에서는 다수의 병사를 사지로 몰아버린다. 운좋게
외교와 전쟁지도로 세계대전의 승자 중 하나가 되지만 국가는 피폐해지고 전쟁이 끝난 후 세계의 패권을
잃고 나라는 2등 국가로 전락한다.


히틀러
 
경제, 공업 생산 모두 마비 상태, 초 고인플레와 고액 외채에 실업률은 30%를 넘긴 상태. 이 가혹한
베르사이유 체제에 괴로워하는 독일(바이마르 공화국)을 불과 4년 만에 일으켜 세운다. 영국과 프랑스의
까다로운 감시 속에서도 재군비에 성공, 원한 어린 프랑스를 넘볼 강국으로 부활시킨다. 국내에서는
증오의 적인 유태인에 대한 차별정책을 실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는다.

내정에 있어서는, 당시 세계적으로 열악했던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했으며 공해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공장에 공해 제거 장치를 적극 도입하여, 베를린과 뮌헨, 뉘른베르크를 세계의 유수한 도시로
탈바꿈 시킨다. 또한 당시로선 세계 최첨단의 고속도로와 국민차를 통한 자동차 대중화를 이뤘고 경제
유통 문화를 활성화, 30년 대에는 독일을 미국을 이어 세계 제 2위의 경제강국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외교와 군사 작전으로 1차 세계대전에서 잃은 땅을 차례차례 회복.
독일의 경이적인 성장에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 및 동구의 유력 국가들과 강고한 동맹을 맺는 것에 성공.
소련과도 불가침 조약을 맺어 국내의 안전 보장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다.
 


370
>>369
그럼 반대의 평가를 해줘

 

375
>>370
루즈벨트

세계 대공황에 허덕이는 미국을 뉴딜 정책으로 부흥, 제 2차 세계대전을 이용해 최대의 라이벌 영국과
미래의 라이벌 일본을 동시에 두들기는데 성공. 전쟁이 끝난 후 사상 최대의 경제성장을 달성한다.
 
대 중국정책은 국민당에 가세하는 척하며 일본과 국민당을 싸우게 하여 결과적으로 중국 공산당에
정권을 넘겨 문명을 50년 가까이 후퇴시켜 버린다. 소련이라는 가상 적국을 만들어 군산 복합체와 단단한
팀을 이뤄 강고한 팍스 아메리카나로 세계를 사실상 지배. 적당한 시점에서 사망한 것도 나이스.


처칠

전쟁에 승리했다. 최대의 라이벌 히틀러를 때려부수었다. 영국인도 그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전쟁이
끝나자 서둘러 퇴장시켜버렸다. 스카치의 매상과 보급에 공헌. 직접 쓴 회고록「제 2차 세계대전」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히틀러

군사 상식에 정면으로 반하는 미치광이 명령을 남발. 덩케르그에서는 영프군을 놓쳐 전쟁을 장기화 시킨다.
영국이 굴복하지 않자 눈이 뒤집혀 소련에 침공, 키예프에서 돌아가는 길을 지정하여 결국 모스크바 공략
실패의 원인을 제공한다. 그후 전쟁의 목적은 사실상 잃었음에도 상관없이 죽음으로 사수하라는 명령을
남발, 스탈린 그라드에서는 제 6군을 붕괴시켜 패배를 결정짓는다.

방위전으로 패턴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미친 명령을 반성하지 않고, 전략의 예술가라고까지 일컬어진
만슈타인의 기동방해를 방해. 독일의 가장 우수한 장군인 그를 해고한 끝에 크루스크에서는 오직 신형
전차에 기대어 자살공격이나 다름없는 지시를 하여 패전을 앞당긴다.

그의 마지막 모험이었던 2차 아르덴 전투와 그 패배로 인해 소련군은 더욱 더 기세를 올렸으며 그의
군사적으로 비상식적인 퇴각 불가 명령과 겹쳐 다수의 독일 부녀자가 슬라브인에게 강간당했으며 전후
많은 병사가 소련에 억류되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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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논 2010/05/12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는 승자들의 것이죠.

  2. ㅁㅍㅁㄴ 2010/05/13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당한 군사오타쿠

  3. chimo 2010/05/13 0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지만 만슈타인이나 롬멜을 기용한 것은 히틀러죠. 총통의 역활은 거기까지니까. 훌륭한 총통이었지만... 말년에 답답해서 이것저것하다가 망해먹은 총통이죠.

  4. 검정 2010/05/13 0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에 이기면 장땡

  5. ㅇㄹㅇ 2010/05/13 0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차대전부터는 정말 돈많은 나라가 이기는 전쟁이 돼 버렸죠..독일이 뭔 짓을 했어도 천조국이 참전한 이상 패배는 기정사실이었음.

    • yui88 2010/05/14 1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국도 미국이지만 정말 잘못 건드린 건 소련 아닐까요. 물량이라면 미국도 꼬리를 마는 소련 본토에 쳐들어가려니, 시즈탱크 4대로 저글링 400마리를 잡겠다는 소리.

      미국 잘못 건드렸다 얻어터진 거라면 역시 일본이죠. 처음 1년은 뉴비들 상대로 '레이센의 좌약은 세계 제이이이이이일!'이라면서 기뻐했는데 점점 첸도 만만찮고 오린은 무섭고 갈매기만 봐도 오금이 저리고 항모는 뭐 이리 많은지....... 일본 요격기는 비행기인데 미국 폭격기는 우주선이고 전차 끌고 갔더니 미군은 초이동요새로 덤비는데 이걸 발라버린 우리 편 엉아들 초시공요새는 도대체 뭥미.......
      그렇게 막장루트를 타다가 결국 핵까지 얻어맞고 gg 친 것은 아시아인들에게는 좋은 추억입니다.

  6. 작은앙마 2010/05/13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상당히.. 전체적으로 독일군 입장에서 쓴듯하지 않나요? 음...

  7. ㅋㅋㅋ 2010/05/13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들 이야기는 왜 뺐을까.

  8. 지나가다 2010/05/13 1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틀러의 경제적 성과는 과대 평가된 면이 많습니다. 독일 경제는 바이마르 공화국대에 이미 회복세에 접어들었었고, 특히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지속적인 외교적 노력을 통해 전쟁보상금의 지불 연장이나 삭감, 미국의 대독 지원을 유도한 점 등은 높이 평가받아야 합니다.

    장면의 내수지향적 경제정책이 박정희의 경-중공업 위주 발전정책의 밑거름이 되었듯, 히틀러의 중공업 위주 발전정책은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밑거름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9. ㅇㅇ 2010/05/13 1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 뉴딜정책은 망한 정책이었습니다. 미국에서도 그 당시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않았고 국내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비판으로 인해서 뉴딜을 포기할까 하는 회의도 엄청 빈번하게 열렸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내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망한 '뉴딜정책'때문이 아니라 '때맞춰서 잘 터져준 2차세계대전'덕분에 말이죠.

    • 효우도 2010/05/13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에 부흥하는 미국경제에 쇄기를 박은게 뉴딜정책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뉴딜정책이 뭐고, 망한 이유는 뭔가요?

    • 보에몽 2010/05/13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뉴딜정책의 구체적 사업내용은 검색해보면 잘 나오니 그걸 나열할것까지는 없겠고; 핵심은 예산을 퍼부어서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하는겁니다.

      헌데 대공황같은 자본주의의 위기는 공급과잉-소비부족에서 초래되는건데, 이런 모순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지원을 중간에 끊으면 정책의 파급효과도 오래가지 못하고 중간에 끊기게 되죠. 2차대전으로 세계적인 공급과잉이 해소가 되서 뉴딜의 패착이랄까 하는 점이 뽀록나지 않고 그냥 넘어가게 됐는데, 여튼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뉴딜정책이 성공했다고 보지는 않더군요.

    • 조교쌤 2010/05/16 0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매한 부분이네요.
      노벨상 수상한 크루그먼은 뉴딜정책 성공적으로 평가합니다.

  10. 지나가다 2010/05/14 2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딜을 '정부재정 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책'으로만 인지해서는 곤란합니다(최근 동양의 어느 나라에서도 뉴딜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뉴딜은 정부재정 지출 확대, 농업부분 재조정, 사회안전보장 확대, 금융부분 규제 등 미국의 건국이래 최대의 이념인 자유방임의 흐름을 정부개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미국의 자유라는 이념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건국이래 오랫동안 추진되었던 국가중앙은행이 결국 좌절되고 FRB라는 애매한 형태의 민간 조정기구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뉴딜' 중 경제부분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지만, 일시적으로나마 개선 효과가 있었고, 이러한 (1~2년간 이어진)개선 효과들이 미국 경제의 연쇄 추락을 조금이나마 늦추고 저지할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1. dol 2010/05/14 2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초에 떨어지는 칼을 잡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에러.

    그것도 미리 위기를 대비해서 조절해둔 것도 아니고

    표를 위해서 무작정 버블을 만든주제에 떨어지는 칼을 잡아보겠다고

    장갑도 안끼고 손을 내밀었으니 손만 다칠 뿐입니다.

    그냥 뉴딜의 효과는 칼이 떨어지는데 공포감 없애보겠다고 눈가리개를 한 것

    뿐. 그러나 이런 것은 윗분의 댓글처럼 경제운용의 방향을 돌리는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합니다.

  12. Belle 2010/05/15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믕...

    본문이고 리플이고 먼소린지... @.@...

    하나도 이해 못하는 1ㅅ

  13. 양돌 2010/10/14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근슬쩍 일본을 높이는 태도는 안쓰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