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입사 4년 차이던 내 첫 결혼기념일 날. 그러나 하필이면 그 날 회사에 문제가 생겨서, 아차하면 전 직원이
회사에서 다음 날까지 야근을 하게 될 판이었다. "결혼기념일이니 좀 보내주세요" 하는 소리는 감히 꺼낼 수 조차
없는 그런 분위기였다.

5시쯤 되었을까, T과장이 나를 불러내 봉투를 건내주며,

「이것 좀 K물산에 보내」

라는 것이었다. K물산은 좀 거리가 있는 거래처라서, 지금부터 차로 달려도 8시까지 댈 수 있을지조차 애매했다.
「대신에 그거 보내고나면 집에 돌아가도 좋아」라고는 했지만 바로 집에 간다고 해봤자 K물산에 그걸 보내고
나면 아무리 빨리 돌아가도 11시가 넘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길이 막히는 것을 감안하면 더 늦을 것이 거의 확실
했다.

불평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알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봉투를 받았다. 내용을 한번 훑어보려고 하자 그것조차도
 
「내용은 차 안에서 보면 되잖아! 빨리 가기나 해!」

라는 무정한 T과장. 나 역시도 짜증이 폭발했기에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목소리로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과 내의 다른 직원들에게 동정의 눈빛을 받으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탄 후 봉투를 열자 서류가
아니라 한 장의 종이조각이.

「결혼기념일 축하합니다.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세요」

라고 쓰여져 있었다. 입사한 이래 처음으로 울었다.

그 다음 해, T과장은 친가의 가업을 잇기 위해서 퇴사했다. 송별회 자리에서 그 날 이야기를 꺼내며 인사를 하자

「그런 일이 있었나?」

하며 시치미를 뚝 떼기까지. T과장님, 지금쯤 건강히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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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rk Mage 2007/02/24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상사군요 'ㅅ')b

  2. huraijin 2007/02/24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실이 아닌듯...

  3. 아르 2007/02/25 0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_-; 흠... 저런 상사밑에서라면 일이 힘들어도 보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4. 잭 더 리퍼 2007/02/25 0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기 가족 생일도 다 챙기기 힘든데 남의 결혼 기념일까지... 대단하군요.

  5. 키리코 2007/02/25 0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멋진 과장님이시네요.. 정말 가족이나 정말 친한 친구 챙기기도 힘든데.

  6. 꼬마 2007/02/25 0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장님 최고~

  7. 퍼프 2007/02/25 0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회사에서 나온 게임인가요..
    는 농담이고; 멋있는 분이네요.

  8. hisui 2007/02/25 0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어낸 얘기에 한표. 남의 결혼기념일을 무슨수로 알아내서? 게다가 챙겨주기까지? 일본에서는 남의 것을 챙겨줄 정도로 대단한 날인겁니까? 결혼기념일이?

    • ㅁㅁ 2010/12/26 2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입사한지 4년이라 잖습니까..
      그리고 첫 기념일..
      즉.. 저 사람이 결혼할때 과장은 상사니까 결혼식에 왔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9. Raymundo 2007/02/25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어낸 얘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입사4년차인데 첫 기념일이면 입사 후에 결혼했다는 거고, 그럼 잘 챙기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니겠군요 :-)

  10. 라랄라 2007/02/25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제일 축하해야 할 날은 결혼기념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생일과는 달리 스스로 선택한 거니까요-

  11. cocori 2007/02/25 1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어냈거나 그렇지 않거나는 여기서 중요한 사항이 아니겠지요.

  12. 토토 2007/02/25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면 그 회사의 관행(따뜻한 배려랄까요..ㅎㅎ)일수도 있죠~
    사실여부를 떠나 정말 훈훈한 얘기! 정말 일할 맛 나겠군요^^

  13. 일취 2007/02/25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은 배려가 얼마나 큰 감동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인 듯 싶네요.
    cocori님 말씀처럼 지어냈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중요한게 아닙니다.

  14. 알켓더라즈 2007/02/25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입사4년차라잖습니까 ㅡ.ㅡ)a 그리고 작년에 결혼했죠..
    입사 4년차 사원이 결혼한 날짜정도라면 가까운 직장상사라면 대충 꿰고 있습니다;;;
    바로 작년에 결혼식에 갔을테고 집들이에도 갔을테니까요. ㅡ.ㅡ)
    결혼하고 1년동안 동가식서가숙으로 이부서 저부서 옮겨다니진 않았을테니
    당연히 조금만 신경쓰면 알 수 있죠;;;
    게다가 친한 주변사람들이라면 그날이 결혼기념일이란걸 알았을테니
    상사한테 살짝 말해준걸수도 있구말이죠.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ㅡ.ㅡ) 충분히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좋은 미담 아닙니까;;

  15. 아르토리아 2007/02/25 1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꼼꼼한 상사가 직접 챙기는 경우도 있고,
    보통 과에 여직원이나 누구 하나가 저런 날을 전문적으로 챙기는 총무 역할을 하지요.
    제가 다니는 직장에도 그런 걸 하는 직원이 있구요.
    충분히 있음직한 이벤트인데요.

  16. DynO 2007/02/25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간 급감동한-_-
    멋지군요

  17. 지나가다 2007/02/26 0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상사라면 컴퓨터나 핸드폰 등으로 입력해둘텐데.
    당일이 되면 띠링~

  18. 여기서 2007/02/26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 내용을 확인 안 하고 K물산에 가져다 주었다면...

  19. cyangale 2007/02/26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ㅠㅠ

  20. 흑면 2008/04/07 0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기념일 축하합니다.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세요」
    라는 종이를 k물산에 배달하고 돌아왔습니다.
    라는 결말은....없는건가..

  21. 125 2009/04/07 0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 다른직원들의 사기를 생각해서 저렇게 보낸듯. 비상상황인데 혼자만 기념일이라고 빠지면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힘빠지죠.

  22. 무르 2010/11/17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상속의 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