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유전

5ch 컨텐츠 2009/03/27 00:24

증조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마치 참회하듯이 나에게 해주신 이야기.

증조외할머니는 마치 남자처럼 성격이 괄괄하고 활달하신 분이셨다.
격세유전인가 뭔가로, 그 성격은 우리 어머니가 제대로 이어받으셨다.

그에 비해, 외할머니(외증조할머니의 딸)는 마음씨가 착하고, 상냥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젊어서 암에 걸려 일찍 돌아가셨다.
그 분의 죽음은 가족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그만큼 좋은 아내이며 좋은 어머니셨던 것 같다.
 
외할머니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 말대답은 커녕 뜻을 거스른 적도 없다고 한다.
물론 부모 자식간에 싸운 적도 없을 정도로 언제나 온화하고 온순한 아이였다고 한다.

증조외할머니는 그런 딸의 장래가 걱정되어 딸의 의견도 묻지 않고 인근 지주의 아들과 혼담을
진행시켰다. 물론 딸도 불평 한 마디 없이 그 뜻을 따랐다.
 
상대는 역시 외할머니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해서, 혼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납폐도 끝났다.
그런데 막상 내일은 시집! 이 되자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역시 전 시집가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생각하면, 그 때가 외할머니의 처음이자 마지막 반항이었던 것 같다.
도저히 참다참다 어쩔 수 없이, 겨우겨우 본심을 털어놓으며 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증조외할머니는 이유도 묻지 않고, 아주 강한 어조로 그것을 비난하며 입을 다물게 했다.

다음 날,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시집을 간 딸에 대해 안심하고 있던 그 날 밤.
밤이 되자 집에「선생님」이라는 사람(아마, 어딘가의 교수라고 생각한다)이 와서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하고 구혼했다고. 그 선생님이라는 사람과 외할머니는 오래 전부터 아주 사랑해왔던 사이로, 결혼을
맹세한 사이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시집가는 것을 모르고 우연히 구혼해 온 것이 또 하필이면 시집간
날 밤이었던 것이다. 증조외할머니는 사정을 설명했고, 선생님은 돌아갔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던 것을, 외할머니는 죽을 때까지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증조외할머니도 선생님이 그날 밤 구혼해 온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째서 그 전날 밤, 딸이 시집가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를 묻지 않았던 것일까.
어째서 딸의 첫 반항을, 강한 어조로 비난해 버렸는가.
평상시, 반항이라고는 절대 하지 않는 그 착한 딸의 마음을 어째서 짐작해 줄 수 없었던 것일까.
증조외할머니는 그 일을 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한다고 하셨다.

아마도 외할머니와 무척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은 나에게 이야기를 함으로서, 참회를 하고 싶으셨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트랙백 주소 :: http://newkoman.mireene.com/tt/trackback/242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Cain 2009/03/27 0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 생각없이 들어왔는데 올리셨네... 근데 이거 은근히 씁쓸한 글인데요...

  2. 노노 2009/03/27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dex!

  3. 어설 2009/03/27 0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거짓말?!?!? 1빠다 -ㅁ-/

    라지만 왠지 좀 슬픈 얘기네용;

  4. 어설 2009/03/27 0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젠장.. 글 감상하지 말고 후다닥 올렸어야 했어..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밭같았는데 어느새 댓글이 팍팍..

  5. 왓치맨 2009/03/27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정도면 순위권?

    재밌네

  6. 위드 2009/03/27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저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

  7. D.D 2009/03/27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왠지 가끔 올라오는 이런글을 읽으려고 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ㅜㅜㅜㅜㅜ 감동스토리만 있는 게시판보다 개그가 있고 그 사이에 이런 감동의 글이 있으면 정말 뭔가 더 진합니다 감동이 ㅠㅠ 왠지 저희 어머니 이야기같고 막..ㅜㅜ

  8. - 2009/03/27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길.. 왜 지어낸글같다는 생각만 드는거지..

  9. bullgorm 2009/03/27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옆집에는 예전 외할머니 시집가던 날 청혼하러 왔던 [선생님]의 손자가 이사오고..

  10. OPAL 2009/03/27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리 좀 얘기하란 말야 ;

  11. 2009/03/27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2. 2009/03/27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들곰 「얘기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잖아」

    ...나름 진리

  13. 아스나리카 2009/03/27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부터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14. 로얄이 2009/03/27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증조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또한 그 말을 알아들을때까지 라면 굉장히 오래사신듯

  15. 매실 2009/03/27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이런글을 보면
    '마지막에 반전이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게 진리..

  16. 엉엉 2009/03/27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외할머니가 교수에게 시집가면 지금의 글쓴이는 타임 패러독스로 소멸...

    • 선배거긴안돼 2009/03/28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패러럴인가? 다원 우주론으로 과거가 바뀐 시점부터 새로운 미래가 생길 수도 있으니 그대로 있을 수도 있겠네요.

  17. 만월봉 2009/03/29 0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 증조 할머니가 아직도 살아계셔?

    • 거부기 2009/03/29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닐 걸요? 여기 오는 분들 중 이미 자식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할머니/할아버지 중 한 분은 살아계시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 flfl 2009/03/29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증조할머니도 제가 어른 되고까지 살아계셨는걸요 뭐.

  18. 2009/03/29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기다가, 증손녀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게 하려는 나름의 배려심도....

    라고 하면 너무 앞서 읽은 걸까요...

  19. rurtuy 2009/03/29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집 바로 전날에 그런 말하는 것도
    참고 참는 것도
    단 한번뿐인 것을 얘기도 듣지 않은것도
    다 좋지 않아보이네요. 랄까 전 반항 안하고 참는 아이(or사람)는 무척 힘들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런 면을 고쳐야 할텐데....

    아 근데 중매로, 결혼하려는 사람과 헤어지고 처음 본 남자와 결혼을 강요받다니
    아 여자인 저로썬 정말 비참하네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 S.R. 2009/03/30 0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어야 마땅하지만
      옛날에는 슬프게도 그렇지 못했었기에..

  20. 깜장 2009/03/29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 드라마였으면 "선생님"이 진짜 할아버지

  21. 참는 데도 한계가 2009/03/30 0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이제 25살이 되었지만 아직 편의점 알바를 하고있다.
    외할머니를 닮은 성격이 탓인지
    여태 남자 친구도 하나 없었다.

    동료들이 하기 싫은 일을 내게 떠넘기거나
    내게만 심부름을 시키곤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러지 말라고까지 얘기하고 싶진 않다.

  22. -_-; 2009/04/01 1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집 전날에 말한 사람도 좀 잘못인듯
    애초에 말을 제대로 하라고.

  23. 혹시 2010/10/09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쌍하다...바보같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