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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에게

5ch 컨텐츠 2008/11/28 01:34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로 삼고자 하는 부분은 당신의 패션감각이나 목의 길이 따위가 아닙니다.
사반나에서 사는데 그런 형태를 가지는 것은 매우 편리하고, 생존에도 적절하다는 것은 저희 역시도 인정합니다.

이번에 문제를 삼고자 하는 부분은 당신의 머리에 나 있는, 조이스틱과도 같은「뿔」에 대해서입니다. 도대체
그것은 무엇입니까? 네, 그렇죠. 진화라는 것은 얼핏 보아서는 장난스러워보이지만 사실 매우 합리적인 이성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바보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물론 개중에는 조금 황당한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만,
대부분은 모두들 열심히 생존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현재의 형태를 갖게 된 것이지요. 그만큼 생존경쟁은
까다로운 것입니다.

우리는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이래로 쭉 결코 평탄하지 않은 진화의 과정을 감시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당신과 같은「엉터리 진화」를 해 온 생물들을 하나하나 멸종시켜왔습니다. 나쁘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즉시
그 뿔을 없애고 올바른 진화의 길을 걸어야합니다. 당신은 뭔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뉴욕의 교외에는 그 찻집이 있었다.
오직 가게의 이름과

"수요일은 정기휴일"

이라는 공지만 쓰인 무뚝뚝한 간판. 가게의 마스터 역시 과묵하고 완고한 성격.

그 가게의 쥬크박스에는
마스터가 좋아하는, 영국 출신으로 전세계에서 대성공한,
지금은 해산해 버린 한 그룹의 노래 밖에 없었다.


몇 년 전의 요즘 같은 계절.
그 날은 오후에 갑자기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큰 길가에는 비를 맞으며 빠른 걸음으로 다리를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고
그 중 한 명이 가게에 들어왔다.

꽁꽁 언 몸으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던 그 남자는,
마스터가 좋아하는 밴드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마스터는 한 순간 눈이 휘둥그레져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나 곧바로 익숙한 솜씨로 주문된 커피와 마른 타올을 내밀었다. 

몸을 닦고 안경을 닦은 후 커피를 마시며 가게 안을 둘러 보는 남자.
가게 구석에 놓인 쥬크박스에 시선이 닿았다.
자신의 밴드 노래만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쑥스러운 듯 코인을 꺼내 쥬크박스를 가동했다.
흘러나오기 시작한 곡을 들으면서 남자는
스스로가 달려온 청춘시대를 그리워하듯 눈을 감고는  
천천히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몇 곡인가를 듣고 커피를 마신 후 가게를 나서려는 남자에게,
마스터는 아무 말 없이 우산을 내밀었다.
밖은 아직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우산을 받으며, 언제나처럼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비가 내리면 돌려주러 올께요」

그러나 남자는 우산을 돌려주러 올 수 없었다.
몇 주일 후, 남자는 자택 앞에서 흉탄에 쓰러졌던 것이다.

그리고 20년도 더 지난 오늘도
그 찻집은 똑같이 그 자리에 서있다.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변함없이 과묵한 마스터.
쥬크박스도 같은 밴드의 곡 뿐.
가게 안은 무엇 하나 변함이 없지만,
간판에 쓰여져 있던 글자는 언제부턴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수요일은 정기휴일.  
 다만, 비오는 날은 영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