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07'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7/08/07 대학시절의 업보 (22)
  2. 2007/08/07 리코더 (19)
  3. 2007/08/07 우에쿠사 가츠히데의 일생 (11)
  4. 2007/08/07 남동생을 위한 누나의 결단 (31)

대학 시절, 일방적으로 나한테 반했던 여자애가 있었다. 이미 나한테는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OO씨(나)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니까, 저와 사귀어주세요!」

라는 후배가 있었다. 나는 전혀 잘생긴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왜 그렇게 나한테 목을 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도 혈기 넘치던 남자인 이상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내 여친한테 절대 걸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 또, 일반적인 데이트는 하지 않는다」를 조건으로

사귀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섹스 뿐인 관계가 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내 생일에는 꼭 선물을
챙겨준다거나 나를 우러러보거나 하는 그런 애였다. 관계하던 도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그녀는 좀
집착하는 스타일었다. 아직은 그리 심한 정도가 아니었지만 나중의 문제도 감안해서 적당히 내
취직을 기회로 서로 합의 하에 관계를 끝냈다··

처음 취업한 회사를 몇 년 만에 관두었고, 새 회사로 전직했으며 그 무렵 나는 학창시절의 여자친구와
결혼했다. 결혼하면서 내 성씨를 여친의 성씨로 바꾸었다.

어쨌든 새 직장에는 여자 상사가 있었는데 그 상사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그 상사의 여동생
이야기가 나왔다. 그 계기는,
 

「그러고보니 내 동생하고 △△씨(←나)는 출신대학도 같고 학부도 같네. 나이 또래도 비슷하고」

라는 한 마디. 이야기를 듣자, 여동생은 대학시절 어느 놈팽이(←나!)가 갖고 놀은 끝에 버려져서
(←분명 합의 하에 관계를 끝냈는데?!) 그 이후로 정신적으로 무너져서 지금은 먼 친척의 집에서
친척의 가업을 도우며 요양하고 있다는 것.

「여동생하고 △△씨는 학부도 가깝고 나이 또래도 비슷하니까 어쩌면 아는 사이일지도.
  얼마 후에 여동생이 놀러오기로 했는데, 우리끼리 격려를 위한 회식이라도 하자구. 부탁해!」

하고 부탁받았다.

아무래도 또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

리코더

5ch 컨텐츠 2007/08/07 15:26

초등학생 시절, 친구에게

「니 리코더 맨 윗단하고 A코(같은 반의 여자아이) 리코더 맨 윗단하고 바꿔놓았지롱w」

하고 말하자, 무척 당황하며 곧바로 그 여자애한테 말해서 원래대로 되돌렸다.


사실은 바꿔놓은 적 없지만.


22세 : 도쿄대학의 경제학부 경제학과를 졸업
22세 : 주식회사 노무라 종합 연구소 경제 조사부 입사
24세 : 대장성 재정금융 연구소 연구관  
30세 : 쿄토 대학 조교수 취임
32세 : 미국 스탠포드 대학 후버 연구소 객원 펠로우로 초청  
35세 : 주식회사 노무라 종합연구소 주임 이코노미스트로 임명
38세 : 주석 이코노미스트로 승진  
41세 : 상석 이코노미스트로 승진
42세 : 와세다 대학 대학원 공공 경영 연구과 교수로 취임
43세 : 여고생 팬티를 손거울로 들여다보다가 현행범으로 체포
45세 : 여고생의 엉덩이를 만지다가 현행범 체포

* 우에쿠사 가츠히데(植草一秀) : 경제학자, 경제 평론가, 대학교수, 대표이사, 컨설턴트 등의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인물. 흔히 우에쿠사 교수로 불리는데, 거듭되는 성추행 파문으로 유명.

내가 초등학교 6학년 가을 무렵이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남동생(초4)이 울면서 돌아왔다.
가방은 칼로 너덜너덜하게 찢겨있었고,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얻어맞았으며 전신이 멍투성이.

「부모한테는 말하지 말아라」라고 입막음이라도 되었는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하지
않았다. 나는 경찰에 가자고 했지만, 아이들끼리의 싸움 정도에 경찰이나 부모님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나 나름대로 생각해서,
남동생에게「엄마 아빠한테는 말할 수 없더라도, 이 누나한테는 말해도
되잖아? 말로 하는게 무서우면, 나한테 편지로 써서 줘」라고 말했고 그러자 동생은 곧바로 편지를
써서 주었다.

읽으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나와 같은 반의 바보같은 양아치 집단 녀석들에게 집단린치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라 오랜기간 당했다고. 심지어 담배빵 자국까지 있었다. 나는 학교
체육관 뒤가 녀석들의 집합소였던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대로 학교까지 달려갔다.

녀석들의 리더격인 A가 뭐라고 말을 해왔던 것 같지만, 나는 체육관까지 달려온 기세 그대로 A의
안면에 박치기를 했다. 그외에 녀석들이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말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정말 열심히, 죽어라 박치기를 했다. 때리고 걷어찼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나는, 여기서 A를
죽이지 않으면 동생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었는지도. 바보 녀석의 동료들이 불려온 선생님
에게 제지를 당할 때까지 나는 쭉 A를 때렸던 것 같다.

내 이마에는 유혈이 낭자, 다리와 스커트는 A가 갖고 있던 나이프로 찢겨졌고 전신에는 찔린 상처
투성이. A는 앞니와 코뼈가 부러졌다.

이는 즉시 대문제가 되어, 나와 A 모두 교무실로 불려갔지만,

신장 130 중반, 언제나 공부에 열심, 생활태도도 좋았던 모범생이었던 나와
신장 170 초반, 밥 먹듯이 수업을 땡땡이 치고 학교에 나이프를 소지하고 다니던 A 중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인지는 이미 처음부터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또, 나는 동생의 양해를 얻어 동생의 편지도 공개했다. 그리고 A와 A의 동료들이 했던 일들을 모조리
어른들에게 알렸다. 대소동이 벌어졌고 A 녀석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던 다른 아이들도 자청해서
증인으로 나섰다. 돈을 강제로 빼앗기던 아이도 여러명 있었고, 다양한 방면으로 저지르던 못된 일도
모두 문제화되어 당시 그 A녀석들은 신문보도까지 되었다.

결국 A와 동료들은 보호감호 시설로 전학가게 되었다. 일부는 그대로 학교에 남았지만, 지금까지의
태도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위축되어 남은 학교생활을 보냈다.

비록 내 이마와 다리에는 흉터가 남았지만, 아직도 그 일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