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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

5ch 컨텐츠 2009/08/18 02:45

* 역주 : 운영을 일주일 정도 쉬기로 했지만, 마냥 가만 있기도 찜찜해서 하나만.

일년 전 이야기로, 친구가 꼬셔서 모 MMO(인터넷 게임)을 시작했다.
그 전까지 온라인 게임은 커녕 채팅조차 해본 적이 없던 나는 우연히도 대형 길드에 가입하게 되어
거기의 고참 플레이어 몇 명에게 플레이나 채팅에 관해 도움을 받았다. 내 캐릭터는 모두가 도와준
덕분에 순조롭게 성장, 언제나 즐겁게 플레이 할 수 있었다. 모두 좋은 사람인데다 초보자라는 점도
있어서 나는 길드 내에서 꽤 귀여움을 받았던 것 같다.

자주 도움을 주던 고참 게이머 중에 A가 있었다.
A는 게임의 초창기부터 플레이했기 때문에 레벨도 길드 내에서 가장 높았고, 보통은 구경하기조차 힘든
고급 장비를 몇 개씩이나 소지하고 있어서 모두에게 부러움을 사는 존재였다.
그는 특히 나를 걱정해주어, 언제나 레벨업을 도와주고 자기가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장비를 선물하곤 했다.

소속해 있던 길드는 모두가 사이 좋아, 실제로 오프라인으로 아는 사이의 사람도 몇 명 있다고
하고, 또 게임을 하면서 인터넷 전화로 서로 대화를 하거나 메일주소를 주고받는 일도 자주 있었다.

멤버 대부분이 도쿄, 오사카 인근에 사는 바람에 북쪽 끝의 홋카이도에 사는 나는 오프 모임에 참가할
일이 없었지만 오프라인 파티도 가끔 열리고 있었다.

나는 A를 포함한, 어느정도 친하게 지내던 멤버 몇 명에게 내 정보(실제 나이, 성별女, 하는 일, 메일주소)를
가르쳐 주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휴대폰 번호나 자세한 집주소를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A는 칸사이 지역에 사는 대학생이었다.

그 무렵, 게임에 로그인하면 항상 A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
길드 헌트라고, 길드 동료들과 함께 몬스터를 잡을 때는 물론, 가끔 혼자 플레이를 하고 있을 때도
A에게 가끔 1:1채팅으로 귀엣말이 날아오곤 했다.

「OO접속했어? (′·ω·`)」
「지금 뭐해? 혼자 플레이 해도 괜찮겠어?(′·ω·`)」
「혹시 지금 누구랑 같이 플레이 하는 중?(′·ω·`)」

A로부터의 귀엣말에는 항상 (′·ω·`) 라는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처음에야 항상 잘 대답을 해주었지만 한번은 다른 친구와 함께 치열하게 플레이를 하던 중이라 그의
귀엣말에 답장을 할 틈이 없었고, 미안하지만 나중에 답장을 하기로 하고 답장을 안 했다.
그러자 채 1분도 지나지 않은 틈에 귀엣말이 아닌 일반 채팅(화면 내에 있는 모두가 보이는 채팅)으로

「(′·ω·`)」

라는 문자가 떴다. 꽤 먼 맵에 있었을 A가 우리가 플레이하던 맵으로 온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사냥을
중단하고 귀엣말을 바로 답장 못 준 것을 사과하자,
 
「됐어, OO은 나보다 다른 사람하고 게임하는게 더 즐거운가 보네(′·ω·`)」하며 로그아웃.
 
나는 황당, 함께 있던 친구도 질색.
그때 나에 대한 A의 보통이 아닌 집착을 느꼈다. 그리고 이후로도 내가 로그인을 하면 항상 곧바로
A에게 귀엣말이 왔다.

「(′·ω·`)」

게임에는 친구 등록이라는 기능이 있어서, 친구 리스트에 등록된 사람이 로그인을 하면 리스트에 이름이
빛나, 검색을 하면 어느 맵에 있는지 금방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A는 이 기능을 사용해 나의 로그인 상황과
어디 맵에 있는가를 항상 감시한 것이었다.

나는 A의 행동이 무서워서, 당분간 게임에 로그인하는 것 자체를 삼가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매일같이 휴대폰으로 메일이 왔다.

「어째서 최근 로긴 안 해?(′·ω·`)」
「OO이 없으면 외로워(′·ω·`)」
「혹시 나 싫어진거야? 나는 이렇게 좋아하는데(′·ω·`)」

처음에는 적당히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나에게도 사생활이 있다.
A는 대학생, 나는 사회인.
근무 중이던 휴식 중이던 한밤 중이던 시간을 불문하고 날아오는 메세지에 아주 짜증이 난 나.
어느날 A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다.

「나는 게임하고 있는 동안은 모두와 즐겁게 놀고 싶고, A에게 딱히 특별한 감정은 없다. 또, 한밤 중의
  보내는 메세지도 민폐니까 앞으로는 삼가주었으면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A로부터「(′·ω·`)」

상투적인 답신이었다. 이제 지긋지긋했다.
그 이후로 A와 메일교환은 없어졌고, 게임도 거의 로그인하지 않게 되었다.
로그인하지 않게 된지 3주쯤 지났을 무렵.
길드 내에서 사이좋게 지내던, 다른 사람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최근 잘 안 보이는데, 바빠? 모두 쓸쓸해하니까 가끔씩은 로그인 해^^
   그 A도 대학을 관두었다나 어쨌다나 바빠서인지 로긴을 안 해. 다들 접속을 안 하니까
   심심하네―」

A가 대학을 그만두었다니.
싫은 예감이 들었지만, 그 친구에게는 한가해지면 로그인하겠다고 간단히 답장하고 곧바로 그 일을 잊었다.
나는 당시 모 자격증 시험 학원강사 일을 하고 있었는데, 주로 무료체험스쿨 이벤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무료 체험을 실시한 날은, 마지막에 수강자에게 앙케이트를 했다
수업의 감상이나 강사의 인상, 이름, 주소 등을 WEB상에서 입력하는 간단한 앙케이트였다.
앙케이트를 회수하고, 결과를 데이터로 정리하는 것도 일의 일환이라,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앙케이트 결과를 대충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스크롤에 손이 멈추고, 눈이 모니터에 못박히게 었다.

【수업의 감상】
(′·ω·`)

【강사의 인상】
(′·ω·`)

【이름】
A의 캐릭터명

【주소】
칸사이

전신의 털이 거꾸로 섰다. 수강자 중에 A가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A가 아직 정상(인가?)이던 시절, 내가 홋카이도의 제일 큰 도시의 역 앞에있는 PC계열 자격증
학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일을 서둘러 마친 후, 집이 아니라 신칸센을 타고 200km 떨어진 고향으로 피난했다.
다음 날이 휴일이라 다행이었다.

사이가 좋았던 길드 멤버 몇 명에게는 사정을 이야기하고 게임을 은퇴하기로 했다.
A의 근황을 아는 멤버로부터의 정보에 따르면 A는 홋카이도에서 일을 찾고 있다고. 
그 후 곧바로 휴대폰을 바꾸고 결혼을 위해 퇴직, 홋카이도를 떠났다.

당시 물정에 밝지 못해 이런저런 신상정보를 흘리고 다닌 나에게도 잘못이 있겠지만
얼굴도 모르는 게임 속 만남만으로 그렇게까지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말로 무서웠다.
글로 쓰면 별로 무섭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앙케이트를 발견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이후로 (′·ω·`) 이 이모티콘만큼은 정말로 쓸 수가 없다.
더이상 두 번 다시 온라인 게임은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