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18'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7/01/18 며칠간 쉽니다. (정정) (7)
  2. 2007/01/18 로리콘과 어린 소녀 (21)
  3. 2007/01/18 요리에 자신이 없어 (9)
  4. 2007/01/18 어머니와 새 떼 (4)


개인사정(아르바이트) 관계로 며칠간 쉽니다. 월요일날 뵙시다.


실은 아는 분 중에 취미로 화폐 수집에 심취하신 분이 있었는데, 22일 날 발행되는 신권 지폐 중 수집가치가
높은 지폐 넘버 AAA 0010001 부터 0030000 (각 200다발) 을  한국은행 본점에서  선착순으로 교환해주는
이벤트에 대해 철야조 대기 & 대리구매 아르바이트를 제의해오셔서 승락했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줄을 거의
다 섰다네요. 오늘 오후쯤에 출발할까 했는데 이미 늦었네요. 그렇게 캔슬되었기 때문에 본 공지는 철회합니다.

"처, 철야조 아르바이트라니! 이토록이나 오타쿠에게 특화된 아르바이트가 세상에 또 있을까!" 했는데 개인적으로
좀 아쉽게 되었습니다. 으으. 결국 이번 주말에 경마장이나...


오늘, 전철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나는 여느 때처럼 전철에서 어린 소녀를 노골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소녀가 갑자기 나를
때리면서「적당히 좀 봐! 주위 눈이 있잖아! 변태 로리콘!」이라고 외쳤다.

로리콘이란 말을 들은 난 이성을 잃고 역시 큰 소리로 소리쳤다. 

「로리콘이 뭐가 나빠! 너같은 꼬맹이가 25년 동안 동정을 지켜온 내 기분을 알어?」라고.

그랬더니 그 여자애는 쿡쿡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는 입을 막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 생각하기 시작해도 죽을 만큼 부끄럽다.

물론, 그 여자 꼬맹이가 나를 때린 시점에서 이미 그 차량의 온 승객은 나와 그 소녀에게 쏠리고 있었다.
게다가「로리타 변태」와「동정」의 콤보까지. 만원전철까지는 아니었지만 상당한 수의 승객이 있던 차였다.
여전히 그 애는 입을 다문 채 그대로였고, 거북한 분위기에 머쓱해진 나는 다음 역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여자애가 내 소매를 잡더니,

「저기, 이대로 헤어졌다가 아저씨가 범죄라도 저지르면 나도 기분이 안 좋으니까··· 나라도 괜찮다면···저기···」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미 쪽팔림의 한계에 달해있던 나는 이 전철에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었고「대뜸 무슨 말을 하는거야! 이거 놔!」하고 차갑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 여자애는 소매를 잡은 채로
반쯤 울먹이며「싫어! 내리면 싫어!」하고 매달렸다.

그러던 중 전철 문이 닫겨버렸다. 그랬더니 그 여자애는 내 품에 안기며

「내가 처음으로 아저씨 애인 해줄께!」라고 말했다.

그 순간, 그 차량의 승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나도 감정이 극에 달해서 그만 진짜로
울어버렸다. 꼬맹이를 품에 안고는「앞으로 절대 떨어지지 않을거야!」라고 소리쳐 버렸다. 세상에는 정말 이런
멋진 일도 일어날 수 있구나 하며 감동했다. 철도경찰 분들도 상냥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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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후라이에 도전해서 과거 두 번 모두 후라이를 숯덩이로 만들어버린 나도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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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
학생시절, 기숙사에서 삶은 달걀에 도전한 적이 있었지. 결국 폭발시키고, 계란 5개를 부엌 천장에 박아버린
나도 이제는 간단한 요리는 할 수 있으니까 충분히 만들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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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
조금 자신이 생기기는 했지만 왠지 진 것 같은 기분...

우리 어머니는 새를 아주 좋아해서, 집에서 기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집 앞에 빵 부스러기 등을
뿌려 인근의 참새나 비둘기, 까마귀 등에게 모이를 주곤 했다. 그러나 새들이 모여들면 당연히 새똥같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고 이웃의 항의도 들어왔다. 어머니는 인근 주민들께 사과를 하고, 길 가의 새똥을
청소하는 것으로 양해를 구했다. 

이튿날 아침, 평소처럼 새들이 모여오자 어머니는 모이를 나눠주면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여기서 계속 밥 먹으려면 볼일은 다른 곳에서 보고 와. 그리고, 밥먹을 때는 조용히 해」
라는 식으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빵 부스러기를 나눠주셨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그 이후로 인근의
새 똥은 분명히 줄어들고 있었다. 어머님의 길가 청소를 도울 때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당시 분명히
그 새들은 울음소리도 거의 내지 않았다.

눈에 띌 정도로 새 똥의 양이 줄어들었고, 더이상 새들도 떠들지 않게 되었으므로 인근 주민들도 고개를
갸웃하면서 어머니가 새들의 모이를 주는 것을 묵인하게 되었다.

「너희들도 참, 먹는 욕심도 많구나」
하고 어머니는 웃으면서, 변함없이 먹이를 계속 주었다.


그리고 1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머니는 노화로 쓰러지셨고, 앞날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으
셨다. 어머니가 입원해하고 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이 없어져도, 새들은 평소 그 시간만 되면 죽 모여
들어 30분 정도 거기에 있었다.  

「이제 어머니가 더이상 너희들 모이 못 주셔」
그렇게 말해봤자 새들이 알아들을 리도 없고, 그렇게 1주일, 1개월이 지났음에도 새들은 계속 모여들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가끔 모이를 나눠줘도, 새들은 먹지 않았다. 30분쯤 그렇게 기다리다가 어머니가 나오지
않으면 날아가버린다. 그런 상태가 한달 정도 계속된 며칠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 날 아침,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을 정도로 엄청난 수의 새가 집 앞의 전깃줄에 모여들었다. 물론 새
똥도 싸지 않고, 돌아다니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오직 거기에 앉아있기만 할 뿐이었다.

출관 때 까마귀가 몇 마리 소리높여 울었고, 그에 맞춰 모든 새들이 일제히 날아가버렸다. 매우 이상한 광경
이었다. 아마 어머니와 새들 사이에 어떤 끈끈한 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내가 매일 아침 빵 부스러기를 뿌리고 있다. 변함 없이, 새들은 깔끔하게 모이만 먹고 떠날 뿐 똥을
싸거나 시끄럽게 울거나 하지는 않는다.